*** 프롤로그
신기한 과자를 파는 가게 〈전천당〉.
〈전천당〉의 주인 베니코는 오늘도 부지런히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선반의 먼지를 털고, 여기저기 걸레로 닦고, 새로 나온 과자를 ‘신제품 코너’로 옮긴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슬며시 가게 문이 열리더니 차가운 바람과 함께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들어선다.
정말 예쁘게 생긴 소녀. 얼굴이 인형처럼 하얗고, 입술은 새빨갛다. 단발로 가지런히 자른 진한 남색 머리카락은 반들반들 윤이 난다. 석산꽃 무늬가 그려진 까만색 기모노도 썩 잘 어울렸다.
그러나 온몸에서 묘하게 불길한 기운이 뿜어 나왔다.
그 때문인지 소녀는 마치 어둠의 화신처럼 보였다.
소녀는 베니코를 똑바로 노려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네, 베니코.”
기분 나쁜 목소리다. 노파처럼 걸걸하고 탁한 목소리에 어린아이처럼 어리광 섞인 말씨가 기이하고 기이하다.
베니코는 순간 몸이 굳었지만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이런, 이게 누구신가요? 요도미 씨 아닙니까? ……언제 새장에서 나오셨습니까?”
“인제 막 나오는 길이야. 내가 나온 걸 당신한테 맨 먼저 알리고 싶어서……. 새 가게 소식도 알려 줄 겸 인사하러 왔어.”
“새 가게라고요?”
“그렇다니까!”
요도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요도미는 번뜩번뜩 불꽃 튀는 눈으로 베니코를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당신 덕분에 우리 〈화앙당〉이 쫄딱 망해 버렸거든. 하지만 그딴 일로 기가 꺾일 내가 아니지. 새로 연 가게에서 당신하고 한 번 더 승부를 겨뤄 보려고.”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베니코는 전에 없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미 요도미 씨하고는 여러 차례 승부를 겨루었습니다. 이제 슬슬 싸움을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우리고, 당신은 당신이지요. 우리 가게가 마음에 안드신다면 가까이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걸. 나 스스로 승부가 명백히 가려졌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이 상대해 줘야겠어.”
“…….”
“하지만 안심하라고.”
갑자기 요도미의 목소리가 간사하게 바뀌었다.
“이번에는 어둠의 골목 경찰이 출동할 일은 없을 테니까. 나도 두 번 다시 새장에 갇히는 건 딱 질색이고. 그럼 난 이만 갈게. 개업 준비로 바빠서. 곧 다시 보자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요도미는 휙 나가 버렸다.
베니코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유! 거참, 이렇게 성가신 일이 다 있습니다. 새장 안에서 조금은 머리를 식혔으려니 생각했더니만……. 솔직히 계속 상대하는 것도 번거롭습니다. 상대가 천하의 요도미 씨긴 해도 무슨 수를 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요. 그렇다면 미리 조심하는 것만큼 좋은 방책도 없습니다. 주술사를 불러 가게를 지키는 마법을 좀 더 강하게 걸어 두어야겠습니다.”
베니코는 가게 안에 있는 커다란 검은색 전화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베니코는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요도미의 소맷자락에서 작고 검은 물체 두 개가 굴러떨어져 바람처럼 잽싸게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는 사실을…….
***

‘내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리코에게는 고민이 있다.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갖고 싶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왠지 부끄러운 데다 볼썽사나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갖고 싶어도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누가 “리코, 넌 뭐 갖고 싶어?”라고 물어도 늘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나중에서야 “아, 나만 손해야.”라며 뜨뜻미지근한 자기 성격에 속을 끓인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엄마가 케이크를 세 가지나 꺼내며 리코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었다.
“리코, 뭘 좋아하니? 어떤 거 줄까?”
리코는 여느 때처럼 대답했다.
“그냥 아무거나 괜찮아요.”
사실은 탐스럽고 빨간 딸기가 올려진 초콜릿케이크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리코는 슈크림케이크를 먹었다. 그것도 맛있었지만, 초콜릿케이크에 자꾸 마음이 쓰여서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아이참, 난 왜 이 모양이지?”
집으로 걸어가면서 리코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됐는데 자기가 먹고 싶은 케이크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다니…….’
리코의 여섯 살짜리 남동생 다쓰야는 “이것도 갖고 싶다. 저것도 갖고 싶다.”라며 자기 멋대로 말도 잘한다. 물론 그런 모습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다쓰야같이 뻔뻔스러운 면이 자기한테도 아주 조금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앞으로도 계속 이럴까? 평생 손해만 보고 살까?”
우울하고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때다.
리코는 누군가 부르는 것 같은 느낌에 이쪽저쪽 돌아보았다.
골목이 눈에 띄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좁고 어둑어둑한 골목이다. 골목은 안쪽으로 꽤 깊숙이 이어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골목을 본 순간 리코는 자기를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다.
“이리 와. 이리 오라고.”
골목 저쪽에서 누군가가 부르고 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리코는 휘적휘적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과자 가게 앞에 이르렀다.
〈전천당〉. 크고 오래된 간판이 걸려 있는 과자 가게다.
처음 보는 신기한 과자와 장난감 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오동통 감자〉, 〈금전운 사과〉, 〈엄마 가면〉, 〈팽글팽글 팽이〉, 〈붕어빵 낚시〉, 〈인기 통통 떡〉, 〈안 울어 파이〉, 〈냥이 기사〉, 〈쓱싹쓱싹 껌〉 등.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조그만 냉장고가 있는데 〈쿨하게 사랑하자! 연애 아이스〉니 〈헌티드 아이스크림〉이니 하는 스티커도 붙어 있다.
정말이지 신기한 과자 가게를 보고 리코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갖고 싶다. 정말이지, 갖고 싶어.’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가게 안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흔들리며 다가왔다.
그림자의 주인은 몸집이 엄청나게 큰 아주머니였다.
옛날 동전 무늬가 잔뜩 새겨진 자주색 기모노를 입었고, 머리카락은 눈처럼 새하얗다. 그런데 피부는 또 반들반들하고, 통통한 얼굴엔 기미 하나, 주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알록달록한 유리구슬 비녀를 여러 개 꽂고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 아주 화려한 느낌이다.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주위를 압도하는 힘도 느껴졌다.
놀라서 넋을 놓고 있는 리코에게 아주머니는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잘 오셨습니다, 행운의 손님. 〈전천당〉의 주인 베니코입니다. 갖고 싶은 것을 이미 정하셨습니까? 아직 정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골라 드리겠사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말투는 아주 독특했지만, 목소리는 누구보다 다정했다. 천천히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가, 갖고 싶은 거요?”
“네, 네. 원하시는 것을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리코는 평소 입버릇처럼 “그냥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갖고 싶은 걸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더 이상 손해 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서 리코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내가 말한 거 맞아?’
자기 말에 놀란 리코를 보고, 주인아주머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호. 그렇다면 안성맞춤인 물건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주머니는 가게 왼편 선반 위에서 무언가를 꺼내 리코 앞으로 돌아왔다.
“자아, 이건 어떻습니까?”

아주머니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은 말린 고구마였다.
고구마를 넓적하게 썰어서 햇볕에 말린 고구마말랭이.
슈퍼마켓이나 식품점에서도 흔히 파는 간식이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권해 준 고구마말랭이는 그런 것보다 색이 훨씬 진했다. 노란색이라기보다는 황금색에 가깝고, 희미하게 빛도 뿜어내고 있었다. 투명한 비닐 포장지에 ‘갖고 싶구마’라는 이름이 제비꽃처럼 연한 보라색 글씨로 쓰여 있었다.
“〈갖고 싶구마〉라는 과자이옵니다. 이것을 드시면 손님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밖에도 〈줄래줄래 레몬〉도 있습니다만, 아마도 이쪽이 손님처럼 소심한 분에게는 딱 맞을 거라고 생각하옵니다. 어떠십니까? 단맛도 진한 〈갖고 싶구마〉를 더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주머니의 말에 리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첫 눈에 이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싶구마〉를 갖고 싶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정말이지 꼭 가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그런 리코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참 잘되었습니다. 그러면 값을 치러주십시오. 10엔이옵니다.”
“10, 10엔이요?”
리코는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졌다.
‘오늘 아침에 밥 먹은 거 직접 치웠다고 엄마한테 10엔을 받았는데……. 아까 주머니에 넣었으니까 있을 거야. 어디다 흘리진 않았겠지?’
다행히 10엔은 그대로 있었다. 리코가 동전을 내밀자 주인아주머니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았다.
“오늘의 행운 동전, 2016년에 발행된 10엔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갖고 싶구마〉는 손님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이것저것 충고해 드립니다만, 제가 보기에 손님께서는 몹시도 속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무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
“그럼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아주머니는 리코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리코는 자기 집, 자기 방에 돌아와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으로 리코는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언제 돌아온 거야? 그 과자 가게는 뭐지? 꿈이라도 꾼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리코는 헉하고 놀랐다. 자기 손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갖고 싶구마〉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꾸, 꿈이 아니었어!”
리코는 너무나 기뻐서 펄쩍 뛰었다.
얼른 비닐 포장지를 뜯었다. 비닐을 벗기자 〈갖고 싶구마〉는 더 매력이 넘쳤고 더욱더 맛있어 보였다.
리코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갖고 싶구마〉를 한입 깨물었다. 〈갖고 싶구마〉는 꼭 찰떡처럼 쫀득쫀득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뭐라 말하기 힘든 단맛이 넘쳐흘렀다. 리코는 그 맛에서 태양을 느꼈다.
‘아! 황금빛 햇살과 온기가 느껴져. 어쩐지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만 같았다.
다만, 삼킬 때 까끌까끌한 무언가가 목에 걸리는 느낌이 아주 살짝 났다.
‘그것만 아니라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을 텐데.’
리코는 살짝 아쉬워하면서 〈갖고 싶구마〉를 먹어 치웠다. 다 먹고 나자 어쩐지 몸도 마음도 따끈따끈해졌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그때 부엌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코, 잠깐 와 볼래?”
부엌으로 가 보니 엄마가 요리책을 뚫어질 듯 보고 있었다.
“엄마, 불렀어요?”
“저녁때 뭐 먹을까? 볶음밥이나 덮밥을 할까 싶은데, 어느 게 좋아? 다쓰야는 소고기덮밥이 먹고 싶다더라.”
평소의 리코라면 자기가 아무리 볶음밥이 먹고 싶어도 “그럼 소고기덮밥 먹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리코는 엄마를 마주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볶음밥이 먹고 싶어요.”
“어머, 그래? 근데 웬일이니, 그런 말을 다 하고?”
“엄마가 해 준 볶음밥 먹은 지 한참 됐잖아요. 엄마, 오늘은 볶음밥 만들어 주세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똑똑히 말하는 리코를 보고 엄마는 눈을 끔벅거리면서 대답했다.
“알았어. 리코가 그렇게 말하는데 오늘 저녁은 볶음밥으로 하자.”
“와! 신나!”
“……방글방글 웃기까지 하네. 그렇게 좋아?”
“네, 좋아요!”
리코는 자기가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엄마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리코는 볶음밥이 좋은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것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술술, 저절로 말이 나오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이 〈갖고 싶구마〉를 먹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이렇게나 빨리 효과가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앞으로는 참기만 하지 않을 테야. 두 번 다시 그냥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은 안 해야지.’
리코는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그날부터 리코는 갖고 싶은 것은 갖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도. 날마다 동생이 먼저 고르도록 양보했던 간식도 이제는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고른다. 동생이 “누나가 갑자기 심술쟁이가 됐어.”라며 울상 지을 정도다.
남동생을 울리기는 했지만 리코는 기분이 좋았다. 자기가 왠지 당당하고 예전보다 어딘지 훌륭해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곤란한 일이 생겼다. “갖고 싶다.”라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예쁜 필통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그거 갖고 싶어.”라고 불쑥 말해 버린다. 누군가 주스를 맛있게 마시는 걸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도 먹고 싶어.”라고 말해 버린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 입을 틀어막을 새도 없이 말부터 튀어나왔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는데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보는 것마다 다 갖고 싶어 하는 리코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리코, 미안하지만 이제 너랑 놀기 싫어.”
어느 날 방과 후에 친한 친구 아마미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리코는 마음이 몹시 안 좋았다. 슬프고 괴롭고 창피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다 갖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하고 누가 친구가 되고 싶을까!
“왜…… 왜, 이렇게 되어 버렸지? 처음에는 좋았는데.”
〈갖고 싶구마〉의 효력은 점점 더 빠르게 커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 “갖고 싶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리코는 너무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아무한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곧장 집으로 가기도 무서웠다. 요즘에는 가족들도 싫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친구들도 싫어하고 가족들도 미워한다면 그야말로 설 자리가 없다.
리코는 혼자 있고 싶어서 슬그머니 학교 건물 뒤에 있는 꽃밭으로 갔다.
꽃밭을 두른 벽돌 위에 걸터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 말을 건넸다.
“저어, 이렇게 울고 계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 몸이 좋지 않으십니까?”
‘어어? 이 목소리, 이 말투는?’
혹시나 하며 리코는 얼굴을 들었다.
학교 담장 너머에 몸집이 큰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자주색 기모노를 입고, 하얀 머리에 비녀를 여러 개 꽂고 있다. 그때 그 과자 가게 주인이 틀림없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리코는 놀라운 마음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한편 주인아주머니도 놀란 것 같았다.
“어머나! 전에 우리 가게에 와 주셨던 꼬마 아가씨 아니십니까? 스미마루랑 산책하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분을 만났군요.”
“스, 스미마루요?”
커다란 고양이가 주인아주머니의 어깨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반들반들한 검은 털이 아주 근사한 고양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이 고양이가 우리 스미마루입니다. 우리 가게를 대표하는 간판 고양이지요. 그보다 왜 울고 계십니까?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으음, 저어…… 그 고양이, 갖고 싶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어떡하지? 비녀 갖고 싶어, 아니,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리코는 자꾸 “갖고 싶다.”라는 말만 해 대는 자신이 한심하고 창피해서 얼굴을 가렸다. 이미 리코는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리코는 속상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리코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일이 잘못 꼬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것이든 갖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갖고 싶구마〉의 효과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이건 마치 〈치사하구마〉를 먹은 것 같지 않습니까?”
“도, 도와주세요. 옷이 예뻐, 갖고 싶어. 아, 아니, 그게아녜요. 도와주세요! 이, 이런 건 싫다고요! 이런 힘 더이상 필요 없어요! 필요 없다고요!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주인아주머니는 울부짖는 리코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가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어깨에 앉아 있던 검은 고양이에게 무슨 말인지 속삭였다.
검은 고양이는 영리해 보이는 눈을 반짝이더니 아주머니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학교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들어와 리코 앞에 섰다.
깜짝 놀라 뻣뻣하게 서 있는 리코 다리에 검은 고양이가 몸을 비비적거렸다. 검은 고양이의 털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봄날 햇살처럼 따스했다.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멍했다. 불안도 공포도 한꺼번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리코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꼭 감았다.
어딘가 멀리서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다 괜찮을 겁니다.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우리 스미마루도 애쓰셨습니다.”
리코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발치에 있던 검은 고양이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리코는 귀신한테 홀린 기분으로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그때 아마미가 꽃밭으로 찾아왔다.
아마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리코에게 “아까는 미안했어.”라고 사과했다.
“그래도 말끝마다 갖고 싶다고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너답지도 않고. 그만 그랬으면 좋겠어.”
“응, 나도 알아.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 그만하려고 했어.”
“그런데 왜 자꾸 그래?”
리코는 아마미의 냉정한 대답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아마미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새 신발인 데다 반짝이는 금색 단추까지 달려서 아주 예뻤다.
“그 구두 예쁘다.”
리코의 말에 아마미는 경계하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또 갖고 싶다는 거야?”
“아냐, 아냐.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말을 마친 리코는 “앗!”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손을 입에 갖다 댔다.
‘말하지 않았어. 갖고 싶다는 말을 안 했다고! 그 아주머니 말대로 이제 다 괜찮을 거야.’
리코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리, 리코, 왜 울어?”
“으아아아앙! 아, 아마미이이!!”
리코는 아마미를 와락 껴안았다. 기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리코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고, 좀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며 우물쭈물하는 리코로 말이다. 그래도 뭐든지 다 갖고 싶어 하는 것보다는 훨씬, 훨씬 낫다.
리코는 영문을 몰라 눈만 깜박이는 아마미에게 매달려 한참을 엉엉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