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문을 빼꼼 열고는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무슨 일 있나? 표정이 왜 그리 떨떠름해?”
“네에……. 저, 교수님. 지난번에 〈전천당〉 상품의 샘 플은 이제 충분히 모았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모니터 요원을 시내 쪽에 더 배치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계획은 이제 최종 단계인데 어째서 그러시는 거죠?”
“아, 이번 모니터 요원 배치는 다른 목적이라네.”
로쿠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금까지는 〈전천당〉에서 어떤 상품들을 파는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전천당〉에 도달하게 될 모니터 요원을 통해 모으고 싶은 것이 따로 있네.”
“무, 무얼 모으는데요?”
“이런 걸 만들어 봤네.”
로쿠조는 책상 서랍에서 손목시계처럼 생긴 물건을 꺼냈다. 시계는 하늘색 천으로 만든 시곗줄만 봐도 싸구려 장난감 같았다.
‘어린이용이라서 그런가? 장난감 같네.’
“손목시계 같아 보이지만, 사실 안에 특수한 센서가 들어 있다네. 사람들이 〈전천당〉 상품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지.”
“무, 무얼 위해 모으시는 겁니까?”
“우리 계획을 안전하게 진행하기 위해서야. 그러려면 데이터가 큰 몫을 할 테지. 이번에는 모니터링에 쓸 사람들도 모두 어린이로 뽑을 생각이네. 아이들이 더 솔직하게 반응하는 데다 그 과자 가게의 손님이 될 확률도 높다는 연구 데이터가 나와 있거든. 전국의 신사와 절 근처에 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부적 주머니를 나누어 줄 예정이라네. 그 안에 동전을 몇 개씩 넣어서 말이야. 그 부적 주머니를 받은 아이들 가운데 〈전천당〉에 다다르게 될 아이가 몇 명쯤은 있지 않겠나?”
“…….”
“그래, 동전을 넣은 부적 주머니에 초소형 발신기를 꿰 매 넣을 생각이야. 그렇게 해 두면 일단 들킬 염려는 없을 테니까. 부적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던 아이가 〈전천당〉에 들어가면 가게 주인이 ‘〈전천당〉에 잘 오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할 걸세. 초소형 발신기는 ‘전천당’이라 는 말에 스위치가 켜지면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거든. 나머지는 간단해. 우리 연구원들이 그 발신기를 따라가 서 전천당에 갔던 아이에게 손목시계를 건네주면 되니까.”
“저, 저는 그 계획에 반대입니다.”
세키노세가 간신히 용기를 짜내서 대답했다.
로쿠조는 얼굴에 웃음기를 띤 채 세키노세를 마주 보았다.
“응?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반대라고 말했습니다. 교수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천당〉 과자는 틀림없이 마법과 같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도 많고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전천당〉에 보내 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소린가? 이게 다 연구를 위한 걸세. 무엇보다 자네도 자네 딸을 〈전천당〉에 보내지 않았나?”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얼굴빛이 조금 파리해진 세키노세가 말을 이었다.
“딸아이가 〈베프 측정기〉를 사 가지고 왔을 때 저는 놀랍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마냥 신기했습니다. ‘샘플 이 하나 더 늘었네!’ 하면서요. 하지만 점점 무서워졌습니다. 만약 딸아이가 좀 더 위험한 물건을 샀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지더군요. 교수님, 어린이를 이용한 조사는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될까요? 부탁합니다.”
“……알았네.”
로쿠조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다른 방법을 좀 더 찾아보지. 미안하네, 세키노세. 잠깐 내 머리가 어떻게 됐던 모양이야.”
“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저야말로 주제넘게 의견을 말씀드리고……. 그래도 받아들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님.”
“아니, 괜찮아. 자, 그럼 자네는 돌아가서 하던 연구를 마저 해 주게.”
“네.”
세키노세는 “후유.”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구실을 나갔다.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로쿠조의 얼굴이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눈빛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표정은 냉혹하게 바뀌어 완전히 딴사람 같았다.
세키노세 가즈히코. 머리가 아주 뛰어나고 연구에 대한 열의도 있어서 로쿠조가 마음에 들어 하던 연구원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니 로쿠조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자기 뜻을 거스르는 의견을 말하러 왔다는 점이 무척 언짢았다.
“저따위 인간은…… 이제 필요 없어.”
로쿠조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인기통통떡>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류스케 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난 왜 인기가 없을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자기 얼굴도 꽤 괜찮은 편이라고 류스케는 생각했다. 너무 야위지도 퉁퉁하지도 않고, 코 는 아주 낮지도 높지도 않고, 이도 고른 편이다. 그렇다고 멋있다거나 잘생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도 아니지만.
“하아,
다카시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아.”
류스케는 5학년 1반, 같은 반인 다카시를 떠올렸다. 키가 크고 차림새와 태도가 반듯한 다카시는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그러니 당연히 인기도 많다. 얼마 전에는 6학년 여자 선배한테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다 카시는 오로지 축구에만 빠져 있어서 여자 친구를 사귀 는 일에는 관심이 없단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쿨해서 좋 다며 오히려 인기를 더 끌고 있다.
류스케는 언제나 여자아이들의 시선을 받고 탄성을 자 아내는 다카시가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다카시처럼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 까?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나도 느껴 보고 싶다.’ 그때 주방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류스케! 학교 늦겠어! 언제까지 화장실에 있을거니?”
“지금 나가요!”
류스케는 한 번 더 거울을 보고 나서 가방을 가지러 방으로 갔다.
그렇지만 학교에 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어떡하면 인기를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였 을까? 류스케는 깜빡 길을 잘못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는 좁고 어두운 골목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어엇? 뭐, 뭐지? 여기는 어디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쨌든 그 골목에서 벗어나려고 출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과자 가게 하나를 발
견했다. 아주 오래되어 보였는데, 가게에 걸려 있는 나무 간판은 사극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게 앞에 한가득
진열된 갖가지 과자와 장난감 들도 처음 본 신기
한 물건들이었다.
류스케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 도 까맣게 잊고 과자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가게 안에도 본 적 없는 과자가 그득했다.
〈닌자 진저에일〉, 〈열대 붕어빵〉, 〈갖고 싶구마〉, 〈닥 터 주스 세트〉, 〈점술 캔〉, 〈뽐뽐 쿠키〉, 〈딱 맞아 땅콩〉,〈응석 부려봉〉, 〈설렘 쿠키〉, 〈명필 연필〉, 〈고양이 눈깔 사탕〉, 〈돌봄 박쥐〉, 〈얌전한 가지〉, 〈주얼리 젤리〉 등 별 별 것이 다 있었다.
류스케는 가게 안의 작은 냉장고 안을 들여다봤다. 〈도 전 오렌지 주스〉, 〈휙휙 탄산수〉, 〈스페셜리티〉, 〈발표왕 주스〉같이 류스케의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는 음료 수도 잔뜩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진짜 어마어마하네!”
무척 흥분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뒤를 돌아본 류스케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슬며시 들이마셨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아주머니였는데
마치 우뚝 솟은 산처럼 키가 컸다. 게다가 몸집이 크고 다부져서 꼭 씨름 선수 같았다. 옛날 동전 무늬가 새겨진 자주색 기 모노를 입고, 눈처럼 하얀 머리칼에 알록달록한
유리구슬 비녀를 여러 개 꽂았다. 머리카락은 새하얗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는 또 아니다. 통통한 얼굴에서 주름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이지 독특하고 놀라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주머니는 류스케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행운의 손님.”
아주머니는 기묘한 말투로 노래하듯이 말했다. 류스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떨떨한 얼굴로 우물거렸다.
“저……, 제가…….”
아주머니는 우물쭈물하는 류스케를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미소 띤 새빨간 입술이 수상쩍어 보였다.
“아무래도 손님께서는 아직
원하는 과자를 찾지 못하 신 모양이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베니코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손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 말 씀해 주십시오.”
상냥하고 부드러운 아주머니 목소리에 류스케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저는요,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말을 마치고 류스케는 정신이 번뜩 들면서 얼굴이 새 빨개졌다.
‘으아, 부끄러워. 창피해, 진짜. 여자애들한테 인기 있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은 엄마 아빠한테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아주머니는 웃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오호라, 인기를 끌고 싶으시군요. 저희 가게에는 손님 께 권해 드릴 만한 물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으음, 어느 것이 좋을까요?”
“네에?”
아주머니는 선반 위를 뒤져 부스럭부스럭 무언가 꺼내더니 류스케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잠시 살펴봐주시겠습니까? 그다음에 둘 중 어느 것이
좋을지 손님께서 직접 선택해 주십시오.”
오른손에 놓여 있는 것은 작은 비닐봉지에 든 과자였다. 예쁜 복숭아색 봉지에 귀여운 하트 무늬가 가득 그려져 있고 ‘인기 통통 떡’이라고 쓰여있었다.
왼손에 놓여 있는 것은 동그란 플라스틱 캡슐이었다. 노란색 캡슐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뭔지는 잘 안
보였다.
류스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봉지에 든 과자도 동그란 캡슐도 저마다 강렬한 매력이 있었다. 안에 든 것이 무엇이든
갖고 싶었다.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손이 저절로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넋을 놓고 있는 류스케에게 아주머니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이쪽 봉지는 <인기 통통 떡〉이옵니다. 이름 그대로 먹 으면 인기가 좋아지는 떡이지요. 그리고 이쪽 캡슐에는〈꽃미남 마스크〉가 들어있습니다. 얼굴에 붙이는 순간 꽃미남처럼 잘생겨지는 마스크이옵니다. 이 물건을 써도 틀림없이 인기가 좋아질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하나 골라 주십시오.”
“……둘 다 사고 싶어요.”
“그럴 순 없습니다. 저희 〈전천당〉에서 사실 수 있는 물건은 딱 하나로 정해져 있사옵니다.”
“…….”
류스케는〈인기 통통 떡〉과 〈꽃미남 마스크〉를 뚫어져 라 보면서 둘을 비교했다.
‘인기가 좋아지는 건 둘 다 똑같고, 그럼 뭐가 다르지? 어떤 게 나한테 더 어울리지?’ 류스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두 개가 어떻게 다른데요?”
“글쎄요. 지금 모습 그대로 인기를 끌고 싶다면〈인기
통통 떡을, 꽃미남이 되어서 인기를 끌고 싶다면 〈꽃미남 마스크〉를 권해 드리옵니다.”
류스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 세상 최고의 꽃미남이 되고 싶기도 했지만, 갑자기 얼굴이 잘생겨지면 사람들이 “성형 수술 했네? 그럼 그건 진짜 네 얼굴이 아니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얼굴 그대로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 류스케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인기 통통 떡〉으로 주세요.”
“네네, 가격은 50엔이옵니다.”
류스케는 너무 싸다고 생각하다가 “아차차!”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돈을 한 푼도 들고나오지 않은 것이다. 지금 수중에는 10엔짜리 하나 없었다. 류스케는 애가 타서 아주머니에게 사정했다.
“저기……, 아주머니, 죄송한데요, 제가 깜박하고 지갑 을 안 가지고 왔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 주실 수 있죠?”
“돈을 안 가지고 오셨다고요?”
아주머니는 싱긋 웃으면서 “아니,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사옵니다. 틀림없이 가지고 계십니다. 1975년에 발행된 50엔 동전을요.”
“진짜예요. 정말 집에서 빈손으로 나왔다니까요.”
“그럼 그 부적 주머니는 뭔가요? 그 안에서 동전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옵니다. 잠깐 열어서 확인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아주머니가 류스케의 가방에 매달려 있던 부적 주머니를 가리켰다.
“네? 이거요?”
류스케는 부적 주머니를 풀어서 손에 들었다. 하늘색에 ‘운수 대통’이라는 글씨를 수놓은 부적 주머니다. 류스케가 산 건 아니었다.
일주일 전쯤, 류스케가 다니는 학교의 5학년 전체가 유 명한 신사로 현장 학습을 갔었다. 그때 신사 입구에서 젊 은 남자가 “행운의 부적 받아 가세요!”라면서 행운의 문구 를 수놓은 부적 주머니를 나누어 주었다.
류스케는 딱히 갖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짜라니 까 너도나도 앞다투어 받길래 자기도 덩달아 받았다. 그리고 이왕 받은 부적인데 버리기도 찜찜해서 가방에 매달 아 두었다. ‘이 안에 정말로 동전이 있을까? 진짜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류스케는 부적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 안에 정말로 돈이 들어 있었다. 동 전 몇 개가.
류스케는 부랴부랴 부적 주머니를 헤집어 동전들을 꺼 냈다. 마침 50엔짜리 동전이 있어서 그것을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빙긋 웃었다.
“오늘의 동전, 1975년에 발행된 50엔짜리 동전이 맞사 옵니다. 그럼 이제〈인기 통통 떡〉은 손님 것이옵니다. 다만, 인기가 좋아졌다고 해서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 오. 품격과 친절함이 몸에 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호감
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네? ……네, 네, 알았어요.”
아주머니가 고리타분한 말이나 한다고 생각하면서 류스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쨌든 〈인기 통통 떡〉을 샀다는 사실에 이미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들떠 있었다. 류스케는 봉지를 받아 그 자리에서 열어 보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떡이 안에 들어 있었다. 분홍색이고 하트 모양이다. 슈거 파우더가 뽀얗게 흩뿌려져 있어 서 딱 봐도 먹음직스러웠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됐는 데도 군침이 절로 돌았다.
‘지금 당장 먹고 싶어. 먹어야 해.’
류스케는 얼른 떡을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엄청 맛있어!”
얼마나 쫀득쫀득한지 모른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알맞게 차져서 씹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게다가 맛도 훌 륭했다. 떡 속에 산딸기잼과 크림이 들어 있어서 새콤달 콤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류스케는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꿈결 인 듯 황홀하게 떡을 꿀꺽 삼켰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학교 앞에 서 있었다.
“어어? 내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지? 대체 언제 과자 가 게에서 나온 거야? 언제 그 골목을 빠져나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학교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으아악, 지각이다!”
류스케는 허둥지둥 교문을 지나서 5학년 1반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안녕!”
교실에는 반 아이들이 거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늦게 온 류스케에게
아이들의 눈길이 쏠렸다. 류스케는 왠지 쑥스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으응, 뭔가 이상한데?’
반 아이들이 쳐다보는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 뭐랄까, 눈을 반짝이며 류스케를 주목해서 보고 있다.
그때 여자아이 하나가 류스케에게 말을 걸었다. 고즈에 다. 말주변이 좋고 성격도 소탈해서 반에서 인기가 많다.
“류스케, 빨리 앉아. 선생님 금방 오실 거야.”
“응? 알았어.
고마워.”
류스케가 인사하자 고즈에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눈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왜 저러지?’
류스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류스케의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 이 일제히 말을 걸어왔다.
“류스케, 너 사회 숙제 했어? 안 했으면 내 공책 보여줄게. 말만 해.”
“다음 시간 체육인데 나랑 같은 팀 할래?”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해? 나랑 같이 놀자!”
전부터 조금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지금 껏 류스케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자아이들까지
열심히 말을 붙였다.
류스케는 놀라움을 넘어 기분이 조금 나빴다.
“아, 아니, 갑자기 왜들 이래?”
“왜 그러냐고?”
“그냥. 류스케 네가 멋있어 보여서!”
부끄러운 듯 쿡쿡거리며 속닥이는 여자아이들. 여자아 이들 눈동자에 하나같이 하트가 뿅뿅 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류스케는 모든 것이 이해됐다.
이건 분명 〈인기 통통 떡〉의 힘이다. 먹으면 인기가 좋 아진다고 주인아주머니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실 아주머 니 말을 믿지 않았는데 그 말은 진실이었다.
‘예스! 됐어, 됐다고!’ 류스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날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류스케는 히죽히죽 웃으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기분이 끝내줬다. 온종일 친구들이 자기를 치켜세워 준 데다 담임 선생님까지 몹시 다정 하게 대해 주었다.류스케는 마치 천국 같다고, 〈인기 통통 떡〉 먹기를 정 말로 잘했다고, 앞으로 학교생활이 즐거워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얘, 잠깐만.”
옆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류스케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마치 눈이 부신 것 같은 표정으로 류스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인기 통통 떡〉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한테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류스케는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왜요?”
“뭐 좀 물어볼게. 너 오늘 〈전천당〉이라는 가게에 갔었 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고 류스케는 움찔했다.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여자를 마주 보았다.
“가긴 갔었는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겁주려는 건 아니었어. 괜찮니?”
여자는 놀란 류스케를 안심시키려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전천당〉 주인에게 부탁을 받았어. 과자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손목시계가 있는데 깜빡했다고 너한 테 좀 전해 달라고 해서…….”
여자는 조그만 은색 손목시계를 내밀었다. 디자인은 꽤 화려한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장난감처 럼 보였다.
그럼에도 류스케는 그 손목시계가 마음에 쏙 들었지만 선뜻 받지는 않았다.
“……제가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는데요?”
“주인아주머니가 이리로 가보라고 했어. 초록색 셔츠 를 입은 아주 멋있는 남자아이가 지나갈 테니까 손목시계 를 전해 주라고. 오해하진 마. 나는 시키는 대로 한 것뿐 이니까. 그 주인아주머니…… 너도 알잖니. 아주 신기한 사람이라는 거.”
류스케는 몸집이 큰 아주머니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마법 과자 같은 걸 잔뜩 쌓아 놓고 파는 사람이잖아.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는 일쯤이야 누워서 떡먹기일걸?’
그렇게 생각하며 류스케는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손 목시계를 받았다.
“일부러 가져다주셔서 고맙습니다.”
“천만에. 그 시계 말이야, 항상 차고 다니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 같더라. 주인아주머니가 말하는 걸 들 었거든. 아, 맞다, 맞다! 시계 건전지가 다 되면 이 봉투에 손목시계를 담아서
우체통에 넣으래. 곧바로 새로운 건전 지로 갈아서 다시 보내 준다고.”
여자는 조그만 갈색 봉투를 류스케 코앞에 내밀었다. 봉투에는 어느 우체국 이름과 ‘사서함 39호’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류스케는 봉투도 흔쾌히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손목 시계를 찼다. 가만히 생각하니 손목시계를 가져 본 건 처음이었다. 왠지 조금 어른스러워진 기분이 들었다. 웃는 얼굴로 여자와 헤어진 뒤 류스케는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는 말 그대로 류스케의 세상이었다. 다카시 같은 아이는 이제 라이벌 축에도 끼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류스케의 인기를 누구도 막을 수 없었 다. 여자아이들은 류스케가 웃는 모습을 보려고 온갖 선 물을 주기도 하고, 심지어 숙제를 대신 해 주기도 했다. 류스케와 단둘이 만나서 노는 순서를 놓고 크게 다투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모두가 멋있다고 띄워 주자 류스케는 마치 왕 이라도 된 기분이었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비슷한 날들이 이어지자 류스케는
점점 잘난 체하며 우쭐거리고, 못되게 굴기 시작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 는 아이에게는 매몰차게 “야, 뚱보! 저리 가!”라고 함부로 말했다. 자기가 내뱉은 못된 말에 상처받아 우는 아이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싫어하는 아이한테까지 다정 하게 대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점점 제멋대로 행동하고 다녔는데……. 류스케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같은 반 고즈에의 얼
굴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는 것을.
류스케는 고즈에가 다른 남자아이들하고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샘이 나고 화가 불뚝불뚝 치밀었다.
그때쯤 류스케는 겨우 자기 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 가 고즈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고즈에가 자기 아닌 다른 누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영 마음 에 들지 않았다.
류스케는 수업이 끝나고 몰려드는 여자아이들을 쫓아 버리고는 고즈에에게 다가가 명령하듯이 말했다.
“고즈에, 너를 내 여자 친구로 임명해 줄게. 그러니까 앞으로 다른 남자애들이랑 얘기하지 마.”
‘가장 인기 있고 잘나가는 이 류스케 님의 선택을 받았 겠다, 고즈에는 틀림없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즈에는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눈으로 류스케를 노려 보았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농담이라면 하나도 재미없거든!”
“엉? 뭐,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차가운 반응에 류스케는 당황했다.
“아니, 그러니까 너도…… 나, 나
좋아하지 않아? 지금 까지 늘 나한테 다, 다정했잖아!”
“내가 그랬나? 근데 방금 갑자기 아주 싫어졌어. 뭐, 네 여자 친구로 임명해 준다고? 흥, 웃기시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아, 너무너무 불쾌해! 앞으로 나한테 말 걸지 마.”
고즈에는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휙 가 버렸다. 혼자 교실에 남은 류스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왜? 〈인기 통통 떡〉을 먹은 뒤로는 누구든 나한테
잘해 주고 관심을 받으려고 애썼는데……? 고즈에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다른 애들과 똑같이 내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여자 친구를 시켜 주겠다니까 태도가
확 달 라져서 불쾌하다는 말까지 했어. 왜지?’
“어,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화도
났다. 류스케는 자기 분에
못 이겨 있는 힘껏 책상을 걷어찼다.
쿵! 책상이 넘어지면서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물건들 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중에 복숭아색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인기 통통 떡〉이 들었던 봉지다. 떡을 다 먹은 다음에도 왠지 버리기가 아까워서 줄곧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었다.
그 순간 류스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지 안쪽 에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류스케는 봉지를 주워 들어 읽어 보았다.
〈인기 통통 떡 주의 사항〉
이 ‘인기 통통 떡’을 먹으면 누구에게나 사랑받게 된다. 그 렇지만 진정한 ‘인기’란 품격과
친절함을 갖춘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법. 인기가 좋아졌다고 사람들에게 모질게 굴면 그 대가로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요약: 남에게 못되게 대한 횟수만큼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
게 거절당한다.
“거짓말! 거짓말! 아악!” 류스케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럴 순 없어……. 나, 나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 랐다고! ……어떡하면 좋아. 대가라니, 너무하잖아.”
대체 몇 명한테나 함부로 말하고 못되게 굴었을까? 생각이 안 난다. 생각도 안 날 만큼 많다는 뜻이다. 류스케 는 앞으로 그 횟수만큼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을 당할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정말로 좋아하는 아이한테 호되게
차이고
거절당하게 될까?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인기 통통 떡〉 따위 먹지 않았을 텐데.’
“으, 으아아악!”
류스케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오타니 류스케 · 12세 · 남자아이 · 1975년 발행 50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