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작은 연구실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개중에 몇 명은 꽤 무거워 보이는 자루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들고 온 자루를 연구실 한가운데에 있는 탁자 위에 차례차례 올려놓았다. 놓을 때마다 묵직한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쩔그렁 소리가 났다.
마침내 가장 안쪽에 있던 50대 남자가 일어섰다. 신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품위 있는 모습인데, 무심하게 움직이는 눈초리와 몸짓에서 차갑고도 매서운 분위기가 언뜻언뜻 엿보였다. 회색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빗어 넘긴 그 남자가 입을 뗐다.
“이게 전부인가?”
“네, 로쿠조 교수님.”
“어휴,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어요.”
“맞습니다, 교수님. 신사와 절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사정을 이야기하고 복전함에 모인 동전들을 지폐로 바꾸었는데요, 이게 생각보다 훨씬 번거롭더라고요. 기도하러 오는 분들의 바람과 소원이 담겨 있는 동전이라서 바꿔 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신사와 절도 꽤 있었거든요.”
“게다가 동전이지만 모이니까 아주 무겁더라고요. 여기까지 옮기느라 어깨가 빠개지는 줄 알았습니다.”
“큼큼!”
로쿠조 교수님이라고 불린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그 순간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소리가 딱 멈추었다. 연구실이 조용해지자 로쿠조는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찌 됐든 동전을 이렇게 많이 모아 와서 기쁘군. 여기에는 1엔부터 500엔까지 동전들이 골고루 섞여 있네. 발행 연도 또한 다 다를 것이야. 이 중에 어느 동전이 〈전천당〉으로 가게 해 줄 열쇠가 될지 우린 아직 모르지. 자, 이제 이 동전들을 빠짐없이 기계에 넣어 주게.”
로쿠조는 뒤쪽의 네모나고 커다란 기계를 가리켰다.
“이게 뭡니까?”
“간단히 만들어 봤네. 동전을 집어넣으면 종류별로 분류해 주는 기계야. 게다가 각 동전의 발행 연도가 겹치지 않도록 설정해 두었지. 이 기계를 통과해서 나오는 동전들을 각자 여러 주머니에 나눠 담아서 가지고 돌아가게. 그리고 주위에 큰 걱정거리나 간절한 소원이 있는 가족 또는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동전들을 나누어 주어서 도움을 받도록 하고. 어린이용으로 작고 가벼운 동전 주머니를 만들어 두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모니터 요원도 모집해야 하네. 혹시 모니터 요원들 중에 누군가가 〈전천당〉에 다다르게 되면…… 그다음 단계는 모두 알고 있겠지?”
“네!”
짤랑짤랑 짤그랑, 차르르륵. 동전을 기계에 집어넣는 소리가 연구실 안에 울려 퍼졌다.
여섯 살 가호는 과일을 엄청 좋아한다. 특히 열대 과일이라면 정신을 못 차린다. 가족들과 따뜻한 섬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패션프루트와 망고를 처음 먹어 보고는 그 맛에 푹 빠져 버렸다.
가호는 이런 열대 과일을 집 마당에서 키울 수 있다면 무척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당 여기저기에 심은 열대 과일 나무들에 바나나와 망고가 주렁주렁 열린다. 과일이 먹고 싶으면 그때그때 실컷 따서 배불리 먹는다.
이것이 가호의 꿈이었다.
그래서 마당에 망고씨를 심고 기다려 봤지만 도무지 싹이 트지 않았다. 엄마한테 물어봤다가 괜히 창피만 당했다.
“가호야, 그건 어려울걸? 망고는 기온이 높은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과일이라 우리 집에서는 싹을 틔우기도 쉽지 않아.”
“그럼 바나나는요? 파인애플도 안 자라요?”
“응, 바나나랑 파인애플도 열대 과일이니까. 일년 내내 더운 나라에서나 쑥쑥 자라지.”
“그럼 엄마, 우리도 거기로 이사 가요.”
“아이고, 따님. 엉뚱한 소리 하지 마세요. 과일 때문에 이사를 하다니, 말이 되니?”
“히잉.”
가호는 크게 실망했다.
“아아, 열대 과일……! 우리 집 마당에 열대 과일 나무가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다. 가호는 풀이 죽어 몸이 축 처졌다.
그때 누군가 반갑게 가호를 불렀다.
“어머나, 가호야!”
고개를 들어 보니 루리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루리코 아주머니는 엄마랑 나이가 비슷한 먼 친척인데 무슨 연구소에 다닌다고 했다. 유쾌한 성격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줘서 가호는 루리코 아주머니를 잘 따랐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다지 웃고 떠들 기분이 아니었다. 기운 없이 머리를 숙이는 가호를 보고 루리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가호? 무슨 일 있었어? 기분이 안 좋아?”
“미안해, 루리코. 얘가 고집을 피워서.”
“고집을 피우다니?”
“집에 열대 과일 나무를 심어서 과일이 먹고 싶을 때마다 실컷 따 먹고 싶다나. 그렇게 할 수 없다니까 외국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던 참이었어.”
“아하, 우리 가호가 열대 과일을 좋아하는구나. 그러니까 아주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는 말이네.”
루리코 아주머니는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가방에서 조그만 주머니를 꺼냈다. 흰색과 회색 체크무늬 주머니인데 안에 뭐가 들었는지 빵빵했다. 아주머니는 가호에게 체크무늬 주머니를 내밀었다.
“자, 이거 받아. 가호한테는 좀 무거우려나? 그래도 늘 가지고 다닐 수 있겠지? 어쩌면 가호 소원을 이뤄 줄지도 모르는데…….”
주머니를 받아 든 가호는 깜짝 놀랐다. 고작 귤만 한 주머니가 보기보다 꽤 무거웠다. 짤그랑짤그랑 동전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도 났다.
엄마가 놀라서 말했다.
“루리코, 이거 돈 아니니? 안 돼, 안 돼. 여섯 살 아이한테 돈을 주긴 아직 일러.”
“아유, 그럴 것 없어. 그래 봤자 1엔짜리하고 5엔짜리 동전들이야.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내 돈도 아냐. 우리 연구소에서 작은 실험을 하나 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가호한테 협조를 부탁하는 거지. 우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실험?”
“그래.”
루리코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를 굽혀 가호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가호야, 내 말 잘 들어. 이 주머니 안에는 동전이 많이 들었어. 그런데 이 동전은 보통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같은 데서 쓰면 안 돼.”
“안 돼요? 왜요?”
“응. 이 동전을 쓸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뿐이거든. 〈전천당〉이라는 특별한 과자 가게.”
“거기가 어딘데요?”
“그건 비밀. 그렇지만 이 동전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그곳에 갈 수도 있어. 그때는 이 동전을 써도 돼. 그리고 거기서 과자를 사면 먹기 전에 먼저 나한테 보여 주는 거야. 먹는 건 내가 그 과자를 보고 난 다음에. 어때? 부탁해도 될까?”
“네!”
가호는 루리코 아주머니의 말을 대강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 주머니에 있는 동전은 어떤 특별한 과자 가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돈이라는 말이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는 “무슨 그런 희한한 실험이 다 있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날부터 가호는 밖에 나갈 때면 언제나 루리코 아주머니가 준 동전 주머니부터 가방에 챙겨 넣었다. 유치원에도 몰래 가지고 갔다.
단, 동전 주머니에 대해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했다. 엄마가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다짐을 놓았기 때문이다.
“가호처럼 어린아이는 돈을 갖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근데 이번에는 루리코 아주머니네 연구소에서 하는 실험이라니까 특별히 허락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가호랑 엄마랑 둘만 아는 비밀로 간직하기다? 자, 약속!”
“네에, 약속!”
별일 없이 그럭저럭 한 달쯤 지났다. 그날도 가호는 평소와 똑같이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와 나란히 집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그때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빌딩과 빌딩 사이에 좁다란 골목길이 보였다. 골목길은 안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가호는 불현듯 그 골목에 가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자꾸 들렸으니까.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가 “얘, 이리 와. 이쪽이야, 이쪽.” 하며 가호를 부르고 있었다. 가호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은 저쪽 길로 가 볼래요.”
“저쪽이라니……, 설마 저 좁은 골목? 안 돼. 엄마도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길이야. 그리고 좀 어두워 보이고. 너 깜깜한 거 싫어하잖아.”
“저 길은 괜찮아요! 얼른 가요, 네?”
“앗! 가호야, 기다려!”
가호는 엄마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말대로 그 골목은 어두웠고, 또 아주 조용했다. 조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자동차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빨리 오렴. 이쪽이야.”
소리에 이끌려 가호는 정신없이 뛰었다.
엄마는 “기다려. 가호야, 잠깐 멈춰 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쫓아왔다.
마침내 가호 눈앞에 오래되고 작은 과자 가게가 나타났다. 가호는 숨을 삼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과자들이 줄줄이 놓여 있는 가게라니.
〈끙끙 오징어〉, 〈내버려 둬 팬케이크〉, 〈고블린 초코 에그〉, 〈무도 포도〉, 〈어리둥절 캔〉, 〈코롱 마카롱〉, 〈딱 맞아 땅콩〉, 〈물러가슈 슈크림〉, 〈캐릭터 캐러멜〉, 〈홈즈 빈즈〉, 〈인어 젤리〉, 〈사과해어〉.
하나같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강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는 절대로 팔지 않을 것 같은 반짝거리는 과자들. 가호는 물론 뒤따라온 엄마까지도 과자들을 보고 넋을 잃을 정도였다.
그때 가게 안에서 아주머니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자주색 기모노를 입었는데 키가 씨름 선수만큼 크다. 어림잡아도 가호네 아빠보다 클 것 같다. 게다가 몸집도 크다. 그렇다고 뚱뚱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위풍당당해 보인다고 할까? 머리카락은 할머니같이 새하얗다. 그런데 피부는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고 반질반질하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 같은 아주머니다.
아주머니는 비녀에 달린 유리구슬들이 찰랑거리도록 가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행운의 손님. 〈전천당〉에 오신 걸 환 영합니다.”
“저, 전천당이요?”
“네, 저희 가게 이름이옵니다.”
아주머니의 말투는 묘하게 낯설었다.
가호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루리코 아주머니가 말했던 ‘특별한 과자 가게’가 아무래도 이곳 같았다.
“혹시 여기가 특별한 과자 가게인가요?”
“특별이라? 그보다는 ‘운을 시험하는 과자 가게’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님께서 오늘 이곳에 이끌려 오신 것도 운이라면 운이고, 구입하시는 과자 역시 운입니다.”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후후후, 실례했사옵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전천당〉은 손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소원을 이루어 드립니다. 혹시 이미 원하는 과자를 찾으셨습니까? 어려우시면 제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이옵니까?”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가호는 소원을 말했다.
“저희 집 마당이 과일나무로 꽉꽉 찼으면 좋겠어요. 바나나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을 실컷 먹을 수 있게요.”
“어머나, 근사한 소원이옵니다.”
아주머니는 방긋 웃었다.
“그러시다면 아주 딱 맞는 과자가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서 아주머니는 가게 안쪽에 있는 선반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 가지고 왔다.
“〈열대 붕어빵〉이옵니다. 이것을 드신 분께 열대 정글의 힘을 가져다주는 과자이지요. 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마당에 열대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어떻습니까?”
아주머니 손에는 붕어빵이 들려 있었다. 큼직한 데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노릇노릇해 눈에 확 들어왔다. 붕어빵을 담은 종이봉투에는 예쁜 초록색 바탕에 야자나무 두 그루가 우뚝 솟은 섬 그림이 그려져 있고 글씨도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가호는 아직 글씨를 못 읽지만, 분명히 ‘열대 붕어빵’이라고 쓰여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가호는 보자마자 그 붕어빵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이거야! 내가 갖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거든!’
가호는 자기 마음이 그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사, 살래요!”
“네. 가격은 1엔이옵니다.”
‘이렇게 커다란 붕어빵이 겨우 1엔이라니.’
가호는 기뻐하며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 이 붕어빵 사 주세요!”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맞아! 루리코 아주머니한테 받은 동전이 있었지? 특별한 돈. 특별한 과자 가게에서 쓰라고 했던 그 동전을 쓰면 되겠네.’
가호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동전 주머니를 꺼내려고 했을 때다.
엄마가 과자 가게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저, 그거랑 이것도 같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개구리 모양 동전 지갑을 가리켰다. ‘빈틈없는 지갑’이라고 적힌 꼬리표가 달려 있다.
그런데 과자 가게 아주머니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교롭게도 오늘의 동전을 가지신 분은 이쪽 손님이 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늘은 이쪽 꼬마 손님께만 물건을 팔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시지요.”
“네에?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엄마는 미련이 남아서 〈빈틈없는 지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었는지 가호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가호야! 엄마가 부탁할게. 이 동전 지갑을 고르면 안 되겠니? 그러면 멜론이랑 망고도 너 먹고 싶은 만큼 잔뜩 사 줄게, 응? 그렇게 하자.”
“싫어요. 나 이 붕어빵 꼭 사고 싶단 말이야!”
“얘가!”
어린아이처럼 아쉬운 표정을 짓는 엄마. 그렇지만 가호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열대 붕어빵〉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호야, 엄마의 평생소원인데? 이 지갑으로 하자, 응?”
“안 돼요.”
“쳇, 못됐어!”
도대체 누가 어린아이인지 알 수 없었다. 서로 노려보는 엄마와 딸. 주인아주머니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하시지요. 어머님과 따님이 다투시다니 어리석은 일이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의 행운 손님은 이 쪽, 따님이십니다. 어머님은 다음 기회에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머니가 타이르자 엄마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창피한지 얼굴을 붉혔다.
“어머나! 죄송해요. 제가 소란을 피웠네요.”
“아니,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손님, 〈열대 붕어빵〉의 값을 치러 주시겠습니까?”
“아, 네!”
가호는 동전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동전이 수북이 들어 있었다. 1엔짜리도 많았다.
가호는 얼른 그중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행운 동전은 그것이 아니옵니다.”
“그, 그래요? 어떤 걸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잠시 주머니를 제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 아, 여기 있사옵니다. 바로 이것이옵지요.”
아주머니는 기뻐하면서 주머니에서 1엔짜리 동전 하나를 집어냈다.
“1987년에 나온 1엔 동전. 이것이 바로 오늘의 행운 동전이옵니다. 자, 이제 〈열대 붕어빵〉은 손님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가호는 좋아서 폴짝폴짝 뛰며 〈열대 붕어빵〉을 받았다. 정말이지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기분이 좋았다. 장난감을 선물 받았을 때보다, 세뱃돈을 받았을 때보다 몇 배나 좋았다.
엄마는 그런 가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했다.
더 이상 〈빈틈없는 지갑〉 옆에 있는 것이 괴롭다. 살 수 없다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한 엄마는 가호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과자 가게를 나왔다.
엄마와 딸을 배웅하고 난 다음 과자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계산대의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깜빡거렸다.
“아차, 이거 큰일이군요. 설명서를 잘 읽어야 한다고 일러 드리는 걸 깜박했습니다. 뭐, 잘못될 확률은 반반이고, 그 과자는 잘못된다고 해도 그다지……. 어머나! 벌써 시간이……. 슬슬 스미마루와 마네키네코들에게 간식을 챙겨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부랴부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호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엄마는 아직도 〈빈틈없는 지갑〉에 미련이 남은 것 같았고, 가호는 가호대로 〈열대 붕어빵〉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맛일까? 특별한 과자 가게에서 산 붕어빵이니까 아마 맛도 특별하겠지? 무엇보다 이 붕어빵에는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을 거야. 왜냐하면 그 과자 가게 아주머니가 말하길, 〈열대 붕어빵〉이 열대 정글의 힘을 가져다준 다고 했으니까. 우리 집 마당에 열대 과일이 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도 했잖아.’
어서 〈열대 붕어빵〉을 먹고 싶은 마음에 가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느덧 가호와 엄마는 골목을 빠져나와 늘 다니던 길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가호는 신발을 벗고 얼른 손을 씻었다. 집까지 걸어오느라 마침 배도 조금 고팠다.
‘지금이야. 지금 먹어야지!’
“잘 먹겠습니다!”
루리코 아주머니가 “거기서 과자를 사면 먹기 전에 먼 저 나한테 보여 주는 거야.”라고 했던 말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가호는 〈열대 붕어빵〉을 꺼냈다. 포장지는 휙 휴지 통에 던져 버리고 먼저 붕어빵의 꼬리지느러미 부분을 살짝 깨물어 먹었다.
“우아, 맛있어!”
여느 붕어빵과 달리 이 〈열대 붕어빵〉은 껍질 부분이 촉촉하고 쫀득해서 마치 찰떡을 먹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안에는 팥이 아니라 달고 진한 잼이 들었다. 잼이 얼마나 맛있는지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일단 열대 과일이란 열대 과일은 죄다 모아 놓은 맛이다. 달콤한 데다 상큼하고 향기가 아주 진하지만 느끼하거나 거슬리지는 않다.
가호는 야금야금 아껴 먹을 생각이었는데 한번 맛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 뒤 “후유.” 하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응? ……어어?”
왠지 갑자기 몸이 더워졌다. 가호는 화르르 불꽃이 타 오르는 듯한 에너지가 손바닥에 모이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마당이 떠올랐다.
젖어 있는 흙, 요전에 심은 망고씨. 그리고 며칠 전 먹 은 용과와 스타프루트까지 가호는 먹은 과일의 씨앗들을 모두 받아 두었다.
‘심고 싶다. 심고 싶어.’
뭔지 모를 힘에 이끌려 가호는 보관하던 씨앗을 꺼내 들고서 마당으로 나갔다. 해가 잘 드는 곳을 찾아 흙을 파내고 먼저 용과, 그다음에 스타프루트 씨앗을 심었다.
다시 요전에 망고씨를 심었던 곳으로 갔다.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는 땅에다 가만히 손을 대고 “자라라. 쑥쑥 자라라.” 하고 속삭였다. 가호는 자기 손바닥에서 에너지가 흘러나와 흙 속으로 스며드는 걸 느꼈다.
‘됐어. 이제 괜찮을 거야.’
묘한 만족감을 느끼면서 가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5월인데도 그날 밤은 열대야처럼 찌는 듯 더웠다. 덥고 습해서 땀이 줄줄 흘렀다.
“후, 더워! 엄마, 에어컨 틀어 주세요.”
가호 말에 아빠도 찬성했다.
“그래, 그래. 에어컨 틀자.”
“전기 요금이 무섭지만 어쩔 수 없네.”
“지금 전기 요금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아. 이러다간 밤을 꼴딱 새우겠어.”
에어컨을 틀자 집 안이 금방 시원해졌다. 가족들은 그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가호는 눈을 뜨자마자 마당으로 뛰어나가 씨앗부터 살펴보았다. 어쩌면 하나쯤은 싹이 텄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가호는 마당에 나가 보고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 말도 안 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무가 몇 그루나 흙을 뚫고 나와 키가 쑥쑥 자라 있었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봇대처럼 곧게 뻗은 나무 줄기와 다시마처럼 두툼하고 기다란 잎이 무성한 나무였다. 늘어진 이파리 끝마다 진분홍색 열매가 달려 있다. 열매 군데군데 황록색 돌기가 삐죽삐죽 돋아 있어서 마치 비늘로 덮인 열대어처럼 보였다.
“앗!”
가호는 허둥지둥 나무 가까이 달려갔다. 나무에 열려 있는 열매는 역시 용과였다. 여기저기에 아기 머리 크기 만큼 큼직한 용과가 매달려 있는데, 벌써 다 익어서 먹을 때가 된 것 같았다.
“지, 진짜 열렸네. 그것도 딱 하루 만에……. 이거 꿈 아니야?”
혹시나 해서 가호는 다른 나무도 보러 갔다.
스타프루트 나무는 가늘었지만 그래도 노란색과 연두색이 섞인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망고도 멋진 나무로 자라 커다란 열매를 묵직하게 달고 있었다.
“야호, 신난다!”
가호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아빠와 엄마가 마당으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마당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광경 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아니……, 이게 말이 돼?”
“이, 이게 다 뭐야? 우리 집 마당이 어떻게 된 거야?”
“엄마 아빠, 마법이에요!”
늘어져 있는 망고를 비틀어 따면서 가호가 소리쳤다.
“마법이라고요! 과자의 마법! 〈열대 붕어빵〉 덕분에 열대 과일이 자라났어요!”
“〈열대 붕어빵〉이라니? 그게 뭔데?”
“그냥 재미로 하는 말인 줄 알……. 아니, 가만있어 봐. 그럼 그 가게는 진짜……. 아아, 거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빈틈없는 지갑〉을 샀어야 했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껌벅거리는 아빠에, 머리를 싸쥐고 안타까워하는 엄마. 그렇지만 가호는 어쨌든 행복했다. 자기만의 과수원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과일이 먹고 싶으면 마당에 나가서 마음대로 골라 실컷 먹을 수 있다.
그날 아침, 가호는 밥 대신 온갖 호화로운 열대 과일을 배불리 먹었다. 다디단 노란 망고, 자르면 예쁜 별 모양이 되는 스타프루트, 부드러운 하얀 과육에 톡톡 터지는 까만 씨가 상큼한 맛을 더해 주는 용과까지.
나무에서 갓 딴 싱싱한 과일을 먹었더니 몸도 좋다고 기쁨의 감탄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맛있는지,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가호는 행복해서 뺨도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이게 다 〈열대 붕어빵〉 덕분이야. ……아니다, 루리코 아주머니한테 받은 특별한 동전 덕분이지.’
아침을 먹고 나서 가호는 부랴부랴 루리코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가호가 “과자 가게에 갔었어요!”라고 말하자마자 글쎄, 아주머니가 가호네 집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근데 어떤 과자를 샀어? 아주머니한테 좀 보여 줄래?”
“……죄, 죄송해요. 아주머니한테 보여 주겠다는 약속을 깜박하고 벌써 다 먹어 버렸어요.”
“뭐라고? 진짜야?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루리코 아주머니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가호는 잔뜩 겁을 먹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금세 마음을 바꾸었는지 가호를 보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 미안, 미안해. 화내는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실망했을 뿐이야. ……어떤 과자를 샀는지 얘기해 줄 순 있지? 그리고 과자 포장지나 상자, 뭐 그런 건 놔뒀겠지?”
“상자는 없었고 포장지는 버렸는데요.”
“뭐? 쓰레기통 어딨니?”
벌떡 일어서는 아주머니에게 엄마가 말했다.
“오늘 쓰레기 배출하는 날이라서 벌써 밖에 내놨지. 아까 쓰레기 차가 와서 가져가는 것 같던데?”
“…….”
아주머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어쨌든 과자 가게에 갔었던 얘기를 자세히 들려줘. 하나부터 열까지 빠뜨리지 말고 싹 다 이야기해 줘야 해.”
눈을 희번덕이며 몸을 앞으로 내미는 루리코 아주머니. 가호와 엄마는 흠칫 놀랐지만, 두 사람이 함께 과자 가게에 도착하게 된 것, 기모노 차림의 커다란 주인아주머니가 있었던 것, 둘 다 서로 원하는 것을 골랐지만 엄마는 안 되고 가호만 살 수 있었던 것, 그 〈열대 붕어빵〉 덕분에 마당에 열대 과일 나무가 자란 것 등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마당을 보고 루리코 아주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 냈다.
“이게 말이 되니? 보고도 못 믿겠네. 단 하룻밤 사이에……. 한 번 더 처음부터 자세히 얘기해 줘. 도대체 어떻게 〈전천당〉에 가게 된 거야? 골목에 들어갈 때, 무슨 계기라든가 특별한 점은 없었어?”
루리코 아주머니는 꼬치꼬치 캐묻고, 또다시 따져 물으며 한 시간도 넘게 질문을 해 댔다.
마지막에 아주머니는 가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은? 하룻밤 사이에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것 말고 뭔가 이상한 일이 있진 않았고?”
“으으음, 모르겠어요.”
“정말이야? 정말로 없어?”
집요하게 묻는 루리코 아주머니에게 엄마가 가호 대신 대답해 주었다.
“없는 것 같아……. 왜? 무슨 일인데 이래, 루리코?”
“아냐, 아무것도. 그냥 좀…… 이렇게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으니까 어쩌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만약 평소와 다르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려 줄 수 있지?”
“알았어. 그건 그렇고, 그 과자 가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믿기지 않지만 거기 있는 과자들, 〈열대 붕어빵〉 처럼 죄다 신기한 힘이 있는 거 아니야?”
“아마 그럴걸? 그런데 무슨 수를 써도 그 가게에 찾아 갈 수가 없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운이 좋은 사람만 그곳에 다다르게 된다나 봐.”
“어머머! 그런 거야?”
루리코 아주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그 골목에 다시 가서 한번 찾아 봐. 일단 눈에 띄지도 않을 테니까.”
“말도 안 돼! 아아, 다음번에 가면 내가 원하는 걸 사려고 했는데……. 아까워라. 루리코, 그 가게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모르겠어. 아직 모르는 게 한참 많아. 그리고 그 과자 가게, 어쩌면 평생 한 번밖에 갈 수 없을지도 몰라. 지금까지 같은 사람이 두 번 갔다는 데이터는 우리 연구소에는 없거든. 그래도 과자를 가호만 샀고 넌 못 샀으니까…… 어쩌면 언젠가는 네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갖고 싶은 게 있었어?”
“응, 있었어!”
“그럼 내가 새로운 동전 주머니를 줄 테니까 그걸 몸에 지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는 건 어때? 만약 다음에 네가 그 과자 가게에 다다르게 되고, 무언가 산다면 이번에야말로 꼭 먹기 전에 나한테 보여 주고!”
루리코 아주머니는 무서운 목소리로 다짐을 받고 돌아갔다.
아쉬운 일이지만 가호와 엄마가 〈전천당〉에 가는 행운은 두 번 다시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그 특별한 과자 가게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곳으로 통하는 길도 찾을 수 없었다.
엄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낙심했다. 하지만 가호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실망감보다는 마당의 나무를 늘려 가는 재미가 더 컸다.
가호는 과자나 주스를 사 달라고 조르는 대신 흔치 않은 과일을 사 달라고 조르게 되었다.
체리모야, 패션프루트, 리치, 망고스틴…….
가호는 두리안까지 바랐지만 엄마가 “그것만은 참아 줄래?”라고 말렸다. 냄새가 너무 지독하기 때문이다.
가호는 엄마를 졸라서 산 열대 과일을 먹고서 씨앗을 모조리 마당에 심었다. 그렇게 심어 두면 다음 날에는 반드시 멋지고 큰 나무로 자라 있었고, 탐스러운 열매까지 달려 있었다.
가호네 마당은 꽤 넓은 편이었는데 점점 나무로 가득 차서 조그만 정글 모양새를 갖추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과일을 날마다 수확하고 있었다. 잼이나 셔벗으로 만들고도 남아서 도무지 처치 곤란이었다.
가호네는 다 먹지 못하고 남아도는 과일을 이웃들과 나누었다.
“어머나, 이렇게 귀한 걸 다 주세요?”
“고마워요! 이 과일 먹어 보고 싶었는데…….”
“아, 이것 좀 가져가서 드셔 보세요. 괜찮아요. 과일 주 신 거 고마워서 그래요.”
이웃들은 열대 과일을 받고 기뻐하면서 답례로 온갖 것들을 주었다. 쌀, 채소, 건어물, 정성스럽게 만든 쇠고기 장조림까지.
엄마도 마침내 “가호가 〈열대 붕어빵〉을 산 게 정답이 었네.”라고 인정할 정도로 만족스러워했다.
〈열대 붕어빵〉의 신기한 힘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가호가 심은 씨앗은 금방 나무가 되어 1년 내내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딱 하나, 정말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가호가 〈열대 붕어빵〉을 먹어서인지 매일 밤 집 안과 마당이 후텁지근해서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 〈열대 붕어빵〉은 가호네 집에 ‘열대야’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만약 가호가 〈열대 붕어빵〉을 머리 부분부터 먹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히가시야마 가호 · 6세 · 여자아이 · 1987년 발행 1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