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북

***프롤로그 

 

한 소녀가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석산꽃이 그려진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예쁘장한 소녀다. 그런데 어쩐지 기이한 모습이다. 몸 여기저기에 얇은 얼음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바가지 모양으로 자른 단발머리에서는물이 뚝뚝 떨어진다. 팔다리를 뻣뻣하게 움직이는 모양새까지…… 마치 꽁꽁 얼어붙어 있다가 방금 풀려났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소녀는 바닥에 점을 찍듯이 젖은 발자국을 남기며 하염없이 걸어간다.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짙은 불꽃이 온몸을 휘감고서 날름거린다. 어둠의 화신이기라도 한 걸까? 뭐가 됐든 불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마침내 소녀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대나무숲속. 키 큰 오죽(검은 대나무)들이 창을 꽂아 놓은 듯 꼿꼿이 서서 밤바람에 사락사락 잎사귀 스치는 소리만 내고 있다.

 

 소녀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유난히 굵은 대나무의 뿌리가 땅 위로 봉긋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곧 땅을 뚫고서커다란 검은색 상자가 나왔다. 상자는 ‘화앙당’이라는 글자가 쓰인 부적으로 봉인되어 있다. 소녀는 부적을 떼고상자 뚜껑을 열었다. 과자가 그득하다. 소녀만큼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그러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잡아당기는 과자들이다.

 

 히죽 소녀가 웃었다. “이렇게 봐서는 숨겨 둔 그대로인 것 같네. 완벽해, 완벽해.”

 

 노파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속살거리던 소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방금 걸어온 길을 노려보면서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베니코, 내가 도망친 사실을 알아차리면 분명 허둥대겠지? 지금은 도망치는 신세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야. 이번에야말로 너의 약점을 찾아서 산산조각 내 주마. 〈화앙당〉의 요도미를 우습게 보면 어떻게 되는지 단단히 가르쳐 주겠어. 흐흐흐.”

 

 소녀는 아주 섬뜩하게 웃으며 검은색 상자에서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일곱 살 료헤이는 영웅과 모험 이야기에 빠져 있는 데다 뭐든 폼 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되고 싶은 것도 아주 많다. 모험가, 해적, 스파이, 군인…….

 

지금 가장 동경하는 대상은 화석 탐험가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땅속에 파묻혀 있는 공룡 뼈를 발굴해 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화석 탐험가가 찾아낸 공룡 화석은 참 멋있었다. 특히 커다란 이빨과 기다란 발톱이 료헤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암석에서 아주 오래된 조개껍데기와 이름 모를 바다 식물 따위를 찾아내는 것도 가슴이 설렌다. 료헤이는 자기도 그런 걸 찾을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곤 했다.

 

“좋아, 결정했어! 난 꼭 화석 탐험가가 되고 말겠어!”

 

그날부터 료헤이는 모종삽으로 마당을 파 헤집고 다녔다. 그러나 여기저기 파고 또 파도 나오는 것이라고는 깨진 유리 조각이나 돌멩이, 아니면 징그러운 지렁이뿐이었다.

 

혹시 돌 속에 숨어 있나 싶어 파낸 돌멩이를 망치로 깨보았지만, 조개껍데기도 바다 식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료헤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아무리 찾아봐야 소용없네. 산이라도 가야 하나? 아무튼 밖으로 나가서 찾아야겠어.”

운이 좋은 건지 집 근처에 작은 산이 있다. 거기에 가면 뭐든 찾아낼 것만 같았다.

 

토요일, 료헤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 아빠 몰래 집을 나섰다. 배낭에 모종삽과 망치, 배고픔을 달래 줄 초코칩 쿠키, 발굴한 화석을 담을 비닐봉지 따위를 주섬주섬 넣어 둘러메고서. 중간에 음료수 사 먹을 돈도 잊지 않았다.

 

이만하면 산에 오를 준비는 완벽하다며 료헤이는 힘차게 산으로 향했는데…….

 

어쩌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어느새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낯선 골목 안에 들어서 있었다.

 

‘어, 이상하네? 분명 산에 가는 길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에 와 버렸을까? 이런 데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료헤이는 출구를 찾으며 잰걸음으로 골목을 걸었다.

 

그러다가 자그마한 가게를 발견했다.

 

아주 작지만 그래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과자 가게였다. 료헤이는 화석을 캐려고 했던 계획은 까맣게 잊은 채 가게로 달려갔다. 진열된 과자와 장난감은 하나같이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이었다.

 

‘우아, 이거 좋다! 오, 이것도 좋네! 아, 저것도 멋진걸! 아아, 뭐든 하나 사야지. 꼭 살 거야. 하지만 뭘 사지? 돈이 200엔밖에 없으니까 눈 크게 뜨고 가장 좋은 것을 고르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눈앞에 몸집이 엄청나게 큰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같이 머리카락이 새하얀데 피부는 반들반들 주름 하나 없고, 씨름 선수 같은 몸에는 붉은 자주색 기모노를 입었다. 머리에 꽂은 비녀의 알록달록한 유리구슬이 반짝거렸다. 아주머니는 료헤이에게 인사를 건네다가 멈칫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은……?”

놀란 표정을 짓는 아주머니를 보고 료헤이가 더 놀라버렸다.

 

“왜, 왜요?”

 

“아닙니다. ……그저 잠깐 놀랐을 뿐이옵니다. 아무래도 손님은 저희 가게의 과자를 맛보실 운을 타고나셨나봅니다.”

 

아주머니는 이상한 말투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더니 빙긋 웃었다.

 

“어찌 되었든 〈전천당〉에 잘 오셨습니다. 손님은 모험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이쪽의 〈어드벤차〉는 어떻사옵니까?”

 

그렇게 말한 뒤 아주머니는 냉장고에서 페트병 하나를 꺼내 료헤이에게 내밀었다. 정글과 금화, 보석이 잔뜩 그려져 있고, 꽤 맛있어 보이는 음료수였다.

 

그렇지만 료헤이는 〈어드벤차〉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훨씬

더 멋진 걸 얼핏 보았기 때문이다.

 

‘찾았다! 내가 갖고 싶은 건 저거야!’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전 저게 좋아요! 저기, 초록색 저거요!”

 

“아아, 이것 말씀이십니까?”

아주머니는 한 번 더 냉장고 문을 열어 료헤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병을 꺼냈다.

 

그야말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게 생긴 병이었다. 몸통은 파란색과 초록색 비늘로 덮여 있고, 병뚜껑 부분에는 티라노사우루스 머리 모양 장식이 끼워져 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이 “크하하학!” 하고 울부짖는 것처럼 보인다.

 

료헤이는 이렇게 멋들어진 병을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 료헤이에게 아주머니는 말했다.

 

“〈다이노소다〉이옵니다. 이것을 마시면 아주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생물의 화석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았지만, 료헤이는 믿었다. 〈다이노소다〉에서 흘러나오는 마법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요? 어쩐지 저랑 딱 어울릴 것 같았어요! 저는 화석 탐험가가 될 거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사시겠습니까?”

“네! 살게요, 사요!”

“가격은 100엔이옵니다.”

 

료헤이는 가지고 있던 100엔짜리 동전을 얼른 내밀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것 말고…… 100엔 동전이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걸 드릴까요?”

“네에, 네에.”

‘뭐야? 이상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료헤이는 다른 100엔짜리 동전을 꺼냈다. 그제야 아주머니도 웃는 얼굴로 동전을 받았다.

 

“오늘의 동전, 2017년에 발행된 100엔 동전이 맞습니다. 자, 그럼 이 〈다이노소다〉를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손님, 글자를 읽으실 수 있습니까?”

“음, 제 이름은 쓸 줄 알아요. 그리고 글자가 많지 않은 그림책도 읽고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 베니코가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저희 〈전천당〉 과자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으니까요. 새겨들어 주십시오.”

 

아주머니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다이노소다〉를 마시고 나서는 뚜껑에 붙어 있는 공룡 머리 모양 장식을 벗겨서 주머니나 가방에 잘 넣어 두십시오. 그렇게 해야 화석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손님이 파낼 수 있는 깊이에, 손님이 스스로 가져갈 수 있는 크기의 화석이 있는 곳만 알려 줍니다.”

 

아주머니의 말을 다 듣고서 료헤이는 생각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화석이 아주 깊은 곳에 묻혀 있으면 알 수 없다는 거죠? 너무 커도 안 되고요?”

“네, 그렇습니다. 큰 걸 찾을 수 없다고 불평하지는 마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어요.”

 

료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큰 공룡이나 매머드의 뼈를 찾고 싶었지만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은 엄니나 발톱이니까 상관없을 것 같았다.

 

료헤이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하고 과자 가게를 나왔다. 골목을 조금 걸어 나오자 평소 잘 다니던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게다가 아까 료헤이가 가려고 했던 산도 바로 옆에 있었다.

 

료헤이는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얼떨떨해서 눈만 껌뻑거렸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료헤이가 손에 쥐고 있는 묵직한 〈다이노소다〉 병이 그 증거다.

 

료헤이는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차가운 병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볼수록 멋졌다. 병을 덮고 있는 비늘 모양이 생생해서 그런지 당장이라도 병이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우둘투둘한 비늘의 감촉도 짜릿했다.

 

‘아하, 그래! 이걸 마시고 산에 올라가는 게 좋겠지?’

료헤이는 병뚜껑을 비틀어 따서 벌컥 한 모금 마셨다.

 

슈아아!

입 안 가득 탄산이 터졌다. 혀와 목구멍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아주 자극적이면서 맛있다. 왠지 모험심을 북돋아 주는 것 같은 상큼한 청포도 맛이 났다. 너무 달지도 시지도 않아서 기분 좋게 꿀꺽꿀꺽 마셨다.

 

반은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목마를 때 먹을 생각이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다 마셔 버렸다.

 

“쩝, 아쉽다. 양이 좀 더 많으면 좋았을 텐데…….”


료헤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병뚜껑을 닫고, 공룡머리 모양 장식을 살짝 당겨 보았다.

공룡 장식은 뽕 소리를 내며 쉽게 떨어졌다. 장식 아래쪽에 고리 같은 것이 달려 있어서 꼭 반지 같았다. 아쉽게도 료헤이 손가락에는 너무 컸지만, 끈에 매달아 목에 걸고 다니면 잃어버리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

 

일단 공룡 반지와 〈다이노소다〉 병을 가방 안에 단단히 챙겨 넣고 료헤이는 드디어 산으로 들어섰다.


‘화석을 발견하면 어떤 느낌일까? 우아아아, 벌써 가슴떨려!’


료헤이는 주변을 살피며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벼랑처럼 가파른 비탈이 나왔다. 땅바닥이 깎여

 

서 흙이 드러난 곳에 크고 작은 돌들이 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땅속에서 나온 돌 같았다. 어쨌든 가파르게 기울어진 비탈이 료헤이 앞을 떡 가로막고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비탈을 넘어가는 건 위험할 듯싶었다. 료헤이는 빙 돌아서 가기로 했다.


딸랑!


그때 방울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작게 났다. 마치 료헤이를 부르는 것처럼.

료헤이는 비탈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랬더니 글쎄,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딸랑! 딸랑!


소리는 발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료헤이는 어떤 돌 앞에 이르렀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한 크기이고, 진흙이 말랐을 때처럼 하얀색을 띠었다. 그 돌을 집어 올리자 딸랑 하는 소리가 좀 더 뚜렷하게 들렸다.


‘틀림없이 이 돌 안에서 나는 소리야.’


료헤이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배낭에서 망치를 꺼내 돌을 내리쳤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반듯하게 둘로 쪼개졌다.


그 안에는…….

“어어, 있다! 있어!”


료헤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정말 있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린 조개 화석이 쪼개진 돌 조각들 사이로 다소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긴 했지만, 모양이 아주 깔끔해서 나무랄 데 없는 화석이었다.


료헤이는 숨겨져 있던 보물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감격해 온몸이 확 뜨거워졌다.


‘드디어 찾았다. 〈다이노소다〉에 정말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었어. 좋아, 지금처럼 자꾸자꾸 찾아내자!’


료헤이는 조개 화석을 배낭에 집어넣고서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랬더니 또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 따라가자 이번에는 땅속이다. 얼른 모종삽을 꺼내 땅을 팠다. 새까만 작은 돌 같은

것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공룡 뼈의 일부 같았다. 가지고 싶던 이빨이나 발톱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훌륭한 화석이고 보물이다. 료헤이는 두 번째로 찾아낸 화석도 소중하게 배낭에 담았다.


그날 화석을 네 개나 찾은 료헤이는 신이 나서 싱글벙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료헤이는 그 뒤로도 날마다 공룡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서 화석을 찾아다녔다. 산속에서, 강가에서 화석은 자꾸자꾸 나왔다. 너무너무 갖고 싶어 했던 기다란 공룡 발톱 화석도 세 개나 찾아냈다. 료헤이의 비밀 보물 상자는 하루가 다르게 화석으로채워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형 가즈후미가 료헤이 집에 놀러왔다. 형이라지만 가즈후미는 료헤이보다 스무 살이나 많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유명한 역사 교수의 조교로 일하고 있다.


형이 교수님을 따라 여기저기 유물을 발굴하러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료헤이는 자기가 발견한 보물들을 보여 주었다. 상자에 그득한 화석을 보더니 형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우아아! 이거 진짜 화석이야? 정말로 네가 이걸 다 찾았다고?”

“그렇다니까. 난 화석 탐험가거든. 화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마, 말도 안 돼.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넌 아주 뛰어난 재능이 있는 거야! ……그래! 다음 일요일에 말이야, 형이랑 같이 발굴하러 갈래? 너의 그 재능으로 근사한 유물하나만 찾아 줘, 응? 꼭 같이 가자!”

“나야 좋지, 형!”


료헤이는 아주 신이 나서 대답했다. 어른이 자기를 믿어 주고 의지하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꼭 좋은 걸 찾아 줄게! 형, 나만 믿어!”

료헤이는 몹시 들떠서 일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일요일, 료헤이는 데리러 온 가즈후미 형의 차에 올라탔다. 고속도로를 두 시간쯤 달린 뒤 깊은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가서 발굴 현장에 겨우 도착했을 때에는 엉덩이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료헤이는 아픔 따위 싹 잊어버렸다.

그곳은 산속이었지만, 땅바닥이 깎이고 파여서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여기저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기저기 쪼그려 앉은 어른들이 땅을 파기도 하고 붓으로 살살 흙을 털어 내기도 했다.


“형, 여기는 뭐 하는 데야?”


“신석기 시대 유적지야. 지금으로부터 약 5400년 전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어. 최근에 이 마을을 발견했는데 그릇이나 도구같이 귀중한 유물이 많이 묻혀 있을 거야. 그러니까 료헤이, 너의 그 뛰어난 재능으로 멋진 유물들을 찾아 줘. 뭔가 발견하면 큰 소리로 불러. 난 저쪽에 있을게.” 

 

료헤이에게 삽과 장갑을 건네주고 가즈후미 형은 저만치에 있는 큰 구멍 아래로 내려갔다.

료헤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서 유적지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그러나 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방이 조용했다.


료헤이는 ‘이상하다. 왜 이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퍼뜩 깨달았다.


‘하아, 묻혀 있는 것이 화석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몰

라. 그러니까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그럼, 어떡하지?’

료헤이는 얼굴빛이 파리해졌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찾으면 가즈후미 형이 실망하고말 것이다. 자기를 믿고 여기까지 데려와 주었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됐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정말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걸!’

너무 초조한 나머지 료헤이는 속이 울렁거렸다.


료헤이는 사람들한테서 벗어나고 싶어서 가까운 숲으로 뛰어갔다. 혼자가 되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래도 역시 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근처에는 료헤이가 찾을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료헤이는 주머니에서 공룡 반지를 꺼내며 한숨을 쉬었다.

 

‘후유……, 화석뿐 아니라 다른 보물에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바스락 풀 밟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 료헤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뒤에 웬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빨간 꽃무늬가 그려진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아이는 료헤이보다 한 두 살 많아 보였다. 피부는 새하얗고 단발머리는 짙푸른색을 띠었다.


여자아이는 예쁘장한 얼굴로 헤실헤실 웃으며 료헤이를 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잔뜩 쥔 손을 펼쳐 보인 채. 돌은 모두 짧은 송곳니처럼 생겼는데, 어떤 것은 물처럼 투명하고, 어떤 것은 새싹처럼 예쁜 빛깔을 띠었다. 어린 료헤이도 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아, 끝내준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료헤이에게 여자아이는 돌을 보여 주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찾은 곡옥(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서 끈에 꿰어 장식으로 쓰던 구슬)이야. 옛날 사람들이 옷이나 허리띠 같은 걸 장식하는 데 즐겨 쓰던 물건이지. 예쁘지?”

“이, 이걸 어떻게……? 어디서 찾았어?”

“흥, 별거 아냐. 나는 이런 게 어디 있는지 저절로 다알거든!”

“뭐라고? 어떻게?” 

“이걸 먹었으니까!”


여자아이는 우쭐거리듯 눈을 반짝이며 작은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꾸러미 안에는 노릇하게 구운 쌀과자가 가득 들었다. 얇고 동그란 것이 크기도 그렇고 마치 동전처럼 생겼다.


“〈유적 쌀로뻥〉이라는 거야. 이름 그대로 이런 유적지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물을 자꾸자꾸 발견하게 되거든. 어때, 근사하지?”

“으응…….”


료헤이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유적 쌀로뻥〉에 어떤 힘이 감돌았다. 얼마 전 과자 가게에서 〈다이노소다〉를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바라보고 있으니 참을 수 없이 〈유적 쌀로뻥〉이 갖고싶어졌다.

 

‘저 과자만 있으면 여기서 틀림없이 멋진 유물을 찾아낼 수 있겠지?’

료헤이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조바심이 났다. 


“저……, 그 과자, 나 하나만 줄 수 있어?”

“싫어. 이렇게 귀한 걸 그냥 줄 순 없지. 안 그래?”

“그러지 말고, 부탁할게. 딱 한 개만이라도 좋아. 사실 난 화석을 찾을 수 있거든. 나중에 내가 찾은 화석을 나눠 줄게.”

“필요 없어. 그런 건 다른 사람한테 받는 것보다 내가 직접 찾는 게 훨씬 재미있어. 너도 잘 알 텐데?”

“으음…….”


료헤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여자아이가 갑자기 씽긋 웃었다.


“쳇, 할 수 없지.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그 공룡 반지랑 바꿀래? 이 〈유적 쌀로뻥〉은 너 다 줄게.”

“뭐라고? 싫어!”

료헤이는 허둥지둥 공룡 반지를 뒤로 감추었다.


‘이건 내 보물이야. 누가 준대?’

여자아이의 얼굴에 웃음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래, 그럼. 네 맘이지, 뭐. 근데 네 사촌 형이 사람들한테 마구 떠벌리고 다니는 건 알아? 동생한테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면서, 틀림없이 대단한 물건을 찾아낼거라고 장담하더라. 어휴……, 아무것도 못 찾은 너를 보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몹시 심술궂은 말이었다. 료헤이 마음을 정곡으로 찌

르는 말이기도 했다.


‘싫어. 형이나 다른 사람들이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너무 창피하잖아. 그렇다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료헤이는 결심했다.


“아, 알았어. 대신 한 가지만 확실히 대답해 줘. 이 과자를 먹으면 정말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거지?”

“그럼! 아주 대단한 보물을 찾을 수 있다니까. 약속할테니 어서 그 공룡 반지를 나한테 넘겨. 그리고 ‘이런 건 필요 없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거야!”


어느새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아주 무서워졌다. 웃음기는 싹 사라지고 어두운 기운이 넘쳐흘렀다.

료헤이는 파랗게 질렸다. 무서웠다. 여자아이한테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이런 건 필요 없어!”라고 큰 소리로 외쳐 버렸다.


그 순간 여자아이는 료헤이의 손에서 공룡 반지를 잡아채고는 〈유적 쌀로뻥〉 꾸러미를 쥐여 줬다.

여자아이는 마냥 기쁜지 새빨간 입술 양 끝을 한껏 올리며 웃었다. 덜덜 떨고 있는 료헤이에게 여자아이는 알랑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착한 아이구나. 잘 말했어. ……다른 때 같으면 나중에 과잣값을 받으러 찾아갈 텐데 너는 봐줄게. 자, 얼른

돌아가. 빨리 가라니까.”

“으, 응.”


료헤이는 여자아이한테서 몸을 돌려 재빨리 숲에서달아났다. 유적지까지 단숨에 달려가 여자아이가 쫓아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가즈후미 형이 달려왔다.


“료헤이, 너 어디 갔었어?”

“으응, 잠깐…….”

“말도 없이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그런데 뭐가 좀 있는 것 같아? 어때?”

“자, 잠깐만 기다려 줘. 간식 먹고 나서 잘 찾아볼게.”

“뜬금없이 무슨 간식?”

“한 개만, 딱 한 개만 먹고 할게.”


그렇게 말하고서 료헤이는 들고 있던 종이 꾸러미 속에 허겁지겁 손을 넣어 〈유적 쌀로뻥〉 하나를 꺼냈다. 〈유적 쌀로뻥〉은 바삭하고 짭조름해서 맛있었다. 그런데 뭔가 모래를 씹는 것같이 까슬까슬하고 기분 나쁜 맛도 났다.


하지만 당황해서 정신이 없던 료헤이는 신경 쓸 겨를없이 과자를 꿀꺽 삼켰다.

그 순간 빛이 보였다. 바로 옆 풀숲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료헤이는 〈유적 쌀로뻥〉의 힘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형에게 말했다.


“형, 여기야. 여기를 파 봐.”

“뭐라고? 여긴 발굴 장소하고는 꽤 떨어져 있는데?”

“그래도! 여기라는 느낌이 든다니까! 내 말 믿고 제발 한 번만 파 봐, 응?”

“……어쩔 수 없네. 그럼 조금만이다. 40센티미터까지만 파 보고 아무것도 없으면 돌아갈 거야.”


형은 투덜거리면서 큰 삽으로 료헤이가 가리킨 곳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센티미터도 채 파지 않았을 때 큼직한 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늬도 이상하고 모양도 예쁘지 않은 항아리라니. 료헤이는 시무룩해졌다.


‘아까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석 같은 걸 기대했는데…… 겨우 못생긴 항아리잖아. 실망이야.’


그러나 형은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이, 이건! 여기요! 잠깐 와 보세요!”


가즈후미 형이 부르는 소리에 달려온 사람들은 항아리를 보더니 서둘러 땅 파는 일을 도왔다. 곧 큰 항아리들이 줄줄이 나왔다. 개중에는 오래된 나무 열매와 새까맣게 탄 씨앗 같은 것이 든 항아리도 있었다.


교수님이 벅찬 모습으로 말했다.

“마을의 곡식 저장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군. 여기 이걸 보면 고대인들이 도토리를 모아서 저장했다는걸 알 수 있지!”

“교수님, 이 토기에 든 씨앗 같은 건 뭘까요?”

“음, 지금으로선 뭐라 단정 짓기 어려워. 학교 연구실로 가져가서 좀 더 조사해 봐야겠어! 어쨌든 이 토기들이 고대인의 식생활을 알아낼 귀중한 단서가 될 걸세. 어쩌면 세기의 대발견일지도 몰라!”


교수님 말에 모두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가즈후미 형은 흥분해서 눈을 반짝이며 료헤이를 돌

아보았다.

“료헤이, 너도 방금 들었지? 세기의 대발견이래! 이게 다 네 덕분이야! 네 공이라고!”

“으, 으응.”

료헤이도 물론 기뻤다. 모두들 료헤이를 칭찬하고 ‘발굴 영재’라며 추켜세워 주었다.


그렇지만 잠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발견할 거면 화석이 더 좋은데…….’


한편 아까 그 숲속에서는 검은색 기모노 차림의 여자아이, 〈화앙당〉의 요도미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크게 키득대고 있었다. 손에서 공룡 반지가 반짝반짝 빛났다.

 

“일이 술술 풀리네, 크크크큭! 기막힌 솜씨로 〈전천당〉 손님을 슬쩍 뺏어 왔지 뭐야. 지금쯤 〈전천당〉에서

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겠군. 크크큭! 하지만 아직 멀었어. 이건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두고 봐, 베니코. 앞으로 더욱더 괴롭혀 줄 테니까! 크크크큭!”


요도미는 공룡 반지를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그 순간 공룡 반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요도미는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다음에는 어떤 일을 벌일지 생각에 잠겼다.

 

‘음……,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전천당〉 상품의 힘을 훨씬 커지게 하는 과자를 먹여 볼까? 너무 큰 힘은 감당하지 못하고 휘둘려 버려서 마침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지. 그럼 〈전천당〉 과자를 산 걸 후회하게 될테고. ……으음, 썩 마음에 드는걸!’

 

요도미는 “자, 한번 해 보자고.”라고 중얼거리고는 씩웃으며 숲을 떠났다.

 

수십 년 뒤 어른이 된 료헤이는 공룡학자라는 꿈을 이루었고, 전 세계를 다니며 귀중한 자료를 많이 발굴한다.

 

다만, 발굴하는 족족 공룡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고대 유적이나 황금으로 만든 목걸이, 수정 단검 같은 물건들만 나와서 ‘전공 외 천재 발굴 탐험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치마루 료헤이 · 7세 · 남자아이 · 2017년 발행 1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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