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북

*** 프롤로그

 

과자 가게 〈전천당〉. 신기한 과자와 장난감이 줄줄이 놓여 있는 세상 희한한 과자 가게다.

 

그 가게의 주인 베니코는 씨름 선수같이 덩치가 크다. 머리카락은 할머니처럼 새하얀데, 피부는 반들반들해서 아주 젊어 보인다. 유리구슬이 여러 개 달린 비녀와 옛날 동전 무늬가 새겨진 붉은 자주색 기모노를 즐겨 입는다.

 

어느 날 밤.

 

베니코는 보기 드물게 난처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베니코 앞에 〈전천당〉의 간판 고양이 스미마루와 자그마한 금색 마네키네코가 여럿 모여 있는데, 이들도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전천당〉에는 손님 한 명이 앉아 있다.

 

손님의 이름은 스기타 겐타. 나이는 아홉 살. 베니코가 스미마루와 여행을 간 사이에 가게를 찾아온 남자아이다. 사흘 전 〈전천당〉에 왔는데 과자나 장난감을 살 생각은 않고 “나 여기에서 지낼래요.”라고 막무가내로 우겨대며 지금껏 버티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도 모르는 아이의 등장에 가게를 지키던 마네키네코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여행 중인 베니코를 부랴부랴 불러들였다.

 

마네키네코들한테 자초지종을 듣고 남자아이하고도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고서, 베니코는 이렇게 자기 방에 틀어박혀 생각에 잠겼다. 스미마루와 마네키네코들은 숨죽인 채 그런 베니코를 지켜보았다.

 

마침내 베니코가 어렵게 입을 뗐다.

 

“......저 아이를 잠깐 우리 가게에서 지내게 합시다.”

“먀아?”

“냐냐앙!”

 

“그렇게 말해 봤자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저 아이는 〈전천당〉에 있고 싶어 해요. 소원이 이곳에 머무는 것밖에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

“애초에.......” 하고 운을 뗀 뒤 베니코는 마네키네코들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게 옳지요? 그런데 멋대로 팔각 상자를 돌려 대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는 바람에 저 아이가 행운의 손님으로 뽑혀 〈전천당〉에 이끌려 온 것 아닙니까?”

 

베니코는 아침마다 팔각 상자를 돌린다. 팔각 상자에서 굴러 나온 쇠구슬에 새겨진 숫자로 ‘행운의 동전’이라 부르는 동전을 고른다. 그리고 그 동전을 가진 사람만이 〈전천당〉을 찾아올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이 신기한 과자가게 〈전천당〉의 운영 방식이다.

 

본래대로라면 베니코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아무도 〈전천당〉에 찾아오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가게를 지키던 마네키네코들이 장난삼아 팔각 상자를 돌리는 바람에 ‘5, 1968년’이라고 새겨진 구슬이 굴러 나와 버렸다. 뒤이어 1968년에 발행된 5엔짜리 동전을 가진 웬 남자아이가 〈전천당〉을 찾아오고 만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처럼 〈전천당〉에 찾아온 이 손님은 도무지 아무 물건도 사려 하지 않았다.

 

베니코는 ‘일이 참 번거로워졌구나.’ 싶어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제가 없는 동안 그런 장난을 벌이다니! 단단히 반성하세요.”

“......냐아?”

“아닙니다. 평생 이곳에 있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가게에 머물면서 과자들을 보다 보면 어떤 소원이든 생기겠지요. 어찌 됐든 그때까지는 여기 있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체념하기는 했지만 베니코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 이런 일은 저도 처음입니다. 〈전천당〉에 머물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 손님이 오시다니....... 어쩌면 평범한 손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원망하거나 시샘하는 누군가가 몰래 보낸 사람일지도 모르지요.”

 

베니코의 말에 마네키네코들이 깜짝 놀라 술렁거렸다. 스미마루도 꼬리를 꼿꼿이 치켜세웠다.

 

“냐아냐아!”

“그래요. 그런 짓을 할 만한 누군가라면 맨 먼저 요도미 씨가 떠오릅니다만, 그 사람은 아직 우리 냉동고에 있으니....... 그래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스미마루, 번거롭겠지만 그 아이를 넌지시 지켜봐 주세요. 눈을 떼지 않고 살피다 보면 언젠가는 정체가 밝혀지겠지요.”

“아오옹!”

 

스미마루는 알았다고 대답하는 양 울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를 열겠습니다. 정체불명의 손님이 있다고 해서 가게를 내내 닫아 둘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 불안하더라도 다들 흔들림 없이 자기가 맡은 일을 철저히 해 주세요.”

“냐아압!”

 

금색 마네키네코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침 7시. 〈전천당〉의 검은 고양이 스미마루는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갔다. 서서히 작은 방 앞에서 멈추더니 문틈으로 살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방은 본래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 두는 창고였는데 지금은 그 방에 이부자리가 깔려 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손님을 위해 말끔하게 치웠다.

 

꼬마 손님 겐타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고, 잠옷과 이불을 개고 있다. 아주 야무진 아이인 모양인데 스미마루는 그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겐타는 얌전한 데다 말씨도 예의 바르다. 스미마루와 마네키네코들에게 참견을 하거나 장난을 걸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마음 깊숙이 감추고 있다. 스미마루의 수염이 자꾸 찌릿찌릿한 걸 보면 틀림없다. 베니코는 “누군가가 보낸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라며 의심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겠다고 스미마루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겐타는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개어 놓고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부엌 쪽으로 간다. 물론 스미마루가 그 뒤를 슬며시 따라갔다.

 

부엌에는 베니코가 있었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서 아침 식사 때 먹을 달걀말이를 부지런히 부치는 중이다.

 

금색 마네키네코들도 모두 모여서 작은 그릇에 밥과 된장국을 담아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손에서 손으로 옮겨 나르고 있다.

 

어느새 부엌에 온 겐타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나 곧 미소를 짓더니 짐짓 씩씩한 목소리로 베니코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 편히 주무셨습니까?”

 

베니코가 돌아보며 말했다.

스미마루의 ‘베니코 님’은 오늘도 멋지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 통통한 얼굴, 크고 늠름한 몸에 앞치마 차림도 잘 어울렸다.

 

스미마루는 평소라면 달려가서 응석을 부렸을 테지만 오늘은 꾹 참고 겐타의 행동거지를 계속 지켜보았다.

베니코 앞에 서자 겐타는 조금 겁먹은 것 같았다. 아무리 교활한 녀석도, 악랄한 녀석도 베니코 앞에서는 움츠러들지 않고는 못 배긴다.

 

움찔거리는 겐타에게 베니코가 말했다.

 

“옆방으로 가 계세요. 남색 방석이 겐타 군 자리입니다. 달걀말이도 곧 다 되니까 앉아서 기다리세요.”

“제가 도울 일은 없나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겐타가 옆방에 마련해 둔 자리로 가는 걸 보고 스미마루도 뒤따랐다. 그때 베니코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부탁해요, 스미마루.’

 

베니코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엌 옆에 딸린 꽤 넓은 방에 아침 먹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줄지어 가지런히 놓인 작은 방석들과 음식이 차려진 작은 밥상들. 이건 모두 마네키네코들의 자리다.

 

맨 앞에는 커다란 빨간색 방석과 특대형 밥상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베니코의 자리다. 베니코 자리 양옆에는 어린이용 방석과 밥상이 하나씩 놓여 있는데, 왼쪽 방석은 은색, 오른쪽 방석은 남색이다.

 

겐타는 오른쪽 남색 방석에 벌써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밉살스러워서 스미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노려보고 말았다.

 

‘정체도 모르는 녀석이 우리 베니코 님 옆자리에 떡하니 앉아서 밥을 먹다니. 흥, 진짜 맘에 안 든다니까.’

 

스미마루는 발걸음을 한껏 느릿느릿 움직여 은색 방석 위에 품위 있게 앉았다.

 

“아, 안녕. 스미마루였던가?”

 

겐타가 친한 척 말을 걸어왔지만, 스미마루는 곁눈으로 한번 쓱 쳐다봐 주고는 그만이었다.

 

마침 베니코가 접시 몇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서 방으로 들어왔다. 접시에는 노란 달걀말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베니코는 마네키네코들과 스미마루, 겐타에게 달걀말이를 고루고루 나눠 준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자, 어서들 드십시다. 잘 먹겠습니다!”

“냐아아앙!”

 

마네키네코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 메뉴는 갓 지은 쌀밥에 감자된장국, 무절임, 알이 가득 차 통통한 열빙어구이다. 그리고 베니코가 만든 고소한 달걀말이까지 푸짐하다.

 

겐타가 얌전하게 아침밥을 먹기 시작하자 스미마루도 마음 놓고 열빙어구이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때 겐타가 베니코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뭘 하나요?”

“그야 당연히 가게를 열어야지요. 청소를 하고, 신제품 과자들을 진열하고, 팔각 상자를 돌려서 오늘의 행운손님을 뽑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도와드려도 돼요?”

 

“되고말고요.”

 

베니코의 대답에 스미마루는 물론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네키네코들까지 한꺼번에 된장국을 뿜어버렸다.

 

‘설마! 중요한 가게 일을 이런 꼬마한테 돕게 하다니!’

 

놀라서 눈이 등잔만 해진 스미마루와 마네키네코들 앞에서 베니코 혼자만 여유롭게 말했다.

 

“단,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 베니코에게 물어보고 난 뒤에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게 물건은 다루기 어려운 것이 많사옵니다.”

“네, 그럴게요! 우아, 신난다! 이 가게에서 일해 보고 싶었거든요.”

 

들뜬 모습으로 밥을 입으로 쓸어 넣는 겐타.

한편, 어안이 벙벙해 있던 스미마루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베니코 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다니....... 틀림없이 무슨 까닭이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는 내가 빈틈없이 지켜봐야겠어.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밥을 든든하게 먹어 두자!’

 

 

스미마루도 부지런히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다.

 

***  

 


 

 

비를 부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분명히 있다.

 

가나는 그렇게 믿었다. 왜냐면 가나 자신이 바로 비를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6년, 중요한 날에는 모두 비가 내렸다. 생일과 졸업식, 소풍이나 여행, 데이트. 애초에 가나가 태어난 날에도 큰비가 내렸었다고 하니 뼛속까지 타고난 비를 부르는 사람이다.

 

친구들도 모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서 “가나도 온다며? 그럼 우산 챙겨 갈게.”라든가 “제발 비 좀 내리지 말아 줘! 부탁이야.”라면서 놀린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정말이지 진저리가 난다.

 

“나도 좋아서 이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고!”

 

그런 가나에게 어느 날, 친구 요코가 결혼식 청첩장을 보내왔다. 돌아오는 4월에 결혼식을 올린단다. 꼭 와 달라고 쓰여 있었지만, 가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했다.

 

가나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결혼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축하해 주러 가고 싶다. 그렇지만 괜히 자기가 갔다가 비라도 내리면? 그야말로 한 번뿐인 결혼식을 망쳐 버리는 것이다.

 

결혼식 날 비가 내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빗물에 젖고 흙이 튀는 걸 떠올리면 굽 높은 구두를 신거나 예쁘게 옷을 차려입는 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결혼식장까지 가는 교통수단도 이래저래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으로 가든파티를 한단다.

 

넓은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면?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흥겨운 자리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될 건 불 보듯 뻔하다.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못 가겠어. 아쉽지만 요코에게 선물만 보내는 게 낫겠어.’

 

일요일, 가나는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그날도 역시 비가 내렸다.

 

“하,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가나는 우산을 쓰고서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걷는 동안에도 계속 우울했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해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면 맘 편히 요코 결혼식에 갈 수 있잖아. 신부가 된 요코에게 직접 축하한다고 말해 줄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앞을 보고 가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전혀 모르는 어둑어둑한 골목에 와 있었다.

 

멍하니 딴생각에 정신을 파느라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나가는 쪽이 어디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과자 가게가 눈에 띄었다. ‘전천당’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다. 가게는 아주 작고 낡았는데도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서 와, 어서. 이리 오래도.”

 

빗줄기를 뚫고 과자 가게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가나는 그 축축한 부름에 이끌려 과자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 안에는 몸집이 어마어마한 여자와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자는 새하얀 머리카락에 알록달록한 비녀를 잔뜩 꽂았고, 옛날 동전 무늬가 그려진 자줏빛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한눈에 딱 봐도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편 남자아이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가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행운의 손님.”

“어서 오십시오. 행운의 손님!”

 

 


 

 

덩치 큰 여자를 따라 남자아이도 씩씩하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가겟집 아이인데 일을 돕고 있는 모양이다.

 

가나는 아이가 귀여워서 웃음을 지으며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아주 신기한 물건이 그득했다.

 

〈쫑긋쫑긋 젤리〉, 〈빈틈없는 지갑〉, 〈자장자장 모나카〉, 〈바싹바싹 사탕〉, 〈컨트롤 케이크〉, 〈요괴 양갱〉, 〈무지개 물엿〉, 〈발레 에끌레르〉, 〈피노키오 땅콩〉, 〈어드벤차〉.

 

가나는 이런 희한한 과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팔려 버렸다. 그때 여자가 말을 걸었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이 베니코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전천당〉은 언제라도 행운의 손님을 위한 상품을 갖추고 있사옵니다.”

“원하는 물건이요?”

 

뒤이어 “그런 건 딱히 없어요.”라고 대답하려는데 가나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해를 부르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해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으시다고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친구 결혼식에 가고 싶어서요.”

 

가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자, 자기를 베니코라고 말한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알겠습니다. 손님에게 딱 맞는 과자를 내드리지요.”

 

베니코는 그렇게 말하고서 선반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병에는 레몬 모양 사탕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해야 떠라 레몬〉입니다. 햇빛을 방울방울 모아 반죽해서 만든 무척 귀하고도 경사스러운 사탕입니다. 이름 그대로 맑은 날을 부르는 힘도 아주 강력하답니다. 어떻습니까?”

“살게요!”

 

가나는 베니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해야떠라 레몬〉을 보는 순간 ‘이건 내 과자야!’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갖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가격은 10엔이옵니다. 다만 1997년에 나온 10엔짜리로 값을 치러 주십시오.”

“네? 1997년이요? 그게 딱 있으려나?”

“지갑을 확인해 보십시오. 분명 가지고 계실 겁니다.”

 

베니코의 말을 듣고 가나는 지갑을 뒤졌다. 정말로 있다! 1997년, 10엔짜리 동전!

 

‘헉! 나한테 이 동전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가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얼른 돈을 내고 〈해야 떠라 레몬〉을 받아 들었다.

 

“저희 가게 물건을 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만 한 가지, 비를 무조건 싫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은혜로운 비도 있지 않습니까?”

“네? 아, 네. 그렇지요.”

 

가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 

 

가나가 나가자, 겐타는 베니코를 올려다보았다.

“저 누나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글쎄요, 어떻게 될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손님이 행복해질지 아닐지는 이 10엔짜리 동전이 가르쳐 줄 것입니다. 겐타 군, 이 동전을 병에 넣어 주십시오. 일이 잘되면 금색 마네키네코가 한 마리 더 늘어날 것입니다.”

“네!”

 

겐타는 진지한 표정으로 1997년에 발행된 10엔 동전을 받아서 작은 병에 넣었다.

 

스미마루는 한 발짝 뒤에 서서 겐타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 

 

한편 가나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걸어가는 동안 손에 든 〈해야 떠라 레몬〉을 몇 번이고 내려다보았다.

 

이 사탕, 얼마나 근사한지 모른다. 레몬 모양의 생김새도 귀엽고, 설탕 시럽을 바른 듯 반짝반짝 빛나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먹음직스러운 건 물론이다. 게다가 사탕안쪽에서 빛이 아득하게 뿜어 나와서 정말 햇빛 알갱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나는 〈해야 떠라 레몬〉을 감상하다가 병 바닥에 흰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티커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해야 떠라 레몬 사용 방법〉

축하하고 싶은 날, 기쁜 날에는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렇다면 ‘해야 떠라 레몬’이 안성맞춤입니다.

딱 한알이면 하루 종일 효과가 지속됩니다. 

다만 해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정.......

 

설명은 여기까지. 뒷부분은 글씨가 뭉개져 있었다. 빗물에 젖은 손으로 만지작거려서 번진 모양이다. 더 이상 설명서를 읽을 수 없었다.

 

“앗, 안 돼! 어쩌지? 비는 진짜 지긋지긋하다고!”

 

투덜거렸지만 지금 가나는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다.

 

축하하고 싶은 날에는 해를 불러 날씨를 맑게 만들 수 있다니! 정말로 그런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침 빗줄기가 강해졌다. 가나는 시험해 보기로 했다. 오늘은 〈해야 떠라 레몬〉을 가지게 된 것을 축하하고 싶은 날이다.

 

만약 병 스티커에 적힌 설명이 사실이라면 날씨가 개어야 한다. 해는 나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비는 그쳐야 한다.

 

가나는 기대와 희망으로 부푼 마음을 안은 채 병뚜껑을 열고 〈해야 떠라 레몬〉을 한 알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아이, 셔!”

 

입 안에서 레몬의 상큼한 신맛이 팡팡 터졌다. 그러면서도 달다. 벌꿀같이 순한 단맛이 신맛과 함께 혀로 퍼져나갔다. 신맛과 단맛이 기막히게 어우러져서 가나는 순간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입 안에서 사탕이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그저 그 맛에 빠져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가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비구름이 눈에 띄게 엷어지더니 해가 밝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거짓말같이 날씨가 맑아지고 있었다.

 

‘일기 예보에서는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가나는 〈해야 떠라 레몬〉 병을 빤히 보았다.

 

마법의 과자. 해를 부르는 사탕. 설마 진짜였다니!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제 믿을 수밖에 없다.

 

기쁨이 슬금슬금 번져 나갔다.

 

‘이거면 됐어! 요코의 결혼식에 가도 아무런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야호!”

 

환호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가나는 우산을 접고 집으로 뛰었다.

 

‘백화점에는 안 가도 되겠다. 빨리 집에 가서 요코에게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고 연락해야지.’

 

가나는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해야 떠라 레몬〉을 먹고 그 힘을 사용했다.

 

할머니 생신날과 회사에서 야유회 가는 날, 그리고 데이트하는 날.

 

그때마다 〈해야 떠라 레몬〉은 효과를 발휘해 주었다.

 

특히 데이트 날엔 처음으로 날씨가 좋아서 놀이공원에서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이게 다 〈해야 떠라 레몬〉 덕분이야. 이 사탕을 더 갖고 싶어. 많이 갖고 있으면 마음이 놓일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나는 휴일만 되면 전에 본 과자가게 〈전천당〉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전천당〉을 찾을 수 없었다. 골목 골목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오래된 과자 가게는커녕 그 어떤 가게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애초에 그런 곳은 없었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가나는 실망했지만 그만큼 지금 가지고 있는 〈해야 떠라 레몬〉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이날이야!’라고 생각되는 날에만 먹기로 하고, 일단 요코의 결혼식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 되었다.

 

일기 예보에서는 오늘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가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해야 떠라 레몬〉을 한 알 먹어 두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가나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마음에 쏙 드는 구두를 신고 의기양양하게 결혼식장으로 갔다.

 

도중에 친구 다섯 명을 만나 함께 갔는데, 다들 “가나가 왔는데도 날씨가 좋잖아!”라면서 놀라워했다.

 

“하하, 앞으로 나한테 ‘비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말아 줄래? 이제 나는 ‘해를 부르는 사람’이거든!”

“뭐? 가나 네가?”

“우연이야, 우연. 오늘 딱 하루 기적같이 우연이 일어난 거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난 해를 부르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어!”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어서 가자. 우리 신부님이 얼마나 예쁠지 궁금해 죽겠단 말이야!”

 

웨딩드레스를 입은 요코는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신랑도 아주 근사해서 가나와 친구들은 “저런 사람하고 결혼하다니 멋지다!”라고 수군거렸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결혼식장이 푸르르고 아름다운 정원이니만큼 가나는 〈해야 떠라 레몬〉을 먹어두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야외 결혼식은 날씨가 생명이니까.

 

아름다운 음악 선율이 식장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웨딩 아치 아래에서 기다리고 선 신랑을 향해 신부 요코가 사뿐사뿐 걸어갔다.

 

마침내 두 사람의 손이 서로 포개지는 순간.......

 

휘우우우웅!

 

느닷없이 돌풍이 몰아쳤다. 몸을 똑바로 가누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세찬 바람이 불어닥치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얼굴을 가리며 가나는 하늘을 보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부시던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덮이고 있었다.

 

우르르릉!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그러더니.......

결국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 같은 소나기다.

 

“꺄아아악!”

“으아악!”

 

 


 

 

이번에는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결혼식을 진행하던 사람들도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비를 피할 만한 곳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우지끈! 하늘을 둘로 가르는 듯한 천둥이 울렸다.

 

“꺄아아아아악!”

 

누군가가 지른 비명 소리에 가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폭풍우는 아마도 자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다.

 

‘얼른 여기서 떠나야 해. 모두를 위해서, 요코를 위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가나는 엄청나게 퍼붓는 빗속을 달렸다. 쏟아지는 비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울면서.......

 

 

그날 밤, 친구들은 가나에게 차례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두들 갑자기 결혼식장에서 사라져 버린 가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가나는 “천둥, 번개가 치니까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왔어.”라고 변명하는 답을 보냈다.

 

“그날 천둥, 번개가 진짜 굉장하긴 했지. 근데 그 폭풍우는 뭐였을까? 혹시 가나가 부른 거 아냐? 그렇게 맑았는데 갑자기 폭풍우에 천둥, 번개라니...... 흔한 일은 아니잖아. 가나 너, 그냥 비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폭풍우를 부르는 사람이었구나! 하하하.”

 

친구들은 농담으로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겠지만, 가나는 더욱 풀이 죽었다.

 

‘갑자기 폭풍우가 불어닥친 것은 아마도 나 때문이었겠지? 그렇지만 왜? 분명히 〈해야 떠라 레몬〉을 먹었는데 왜 비가, 아니 비보다도 더 심한 폭풍우가 몰아친 거지? 혹시 나의 ‘비를 부르는 힘’이 너무 세서 〈해야 떠라 레몬〉을 이겨 버린 걸까?’

 

어쨌든 가나는 요코의 결혼식을 망쳐 버린 것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며칠 뒤, 풀이 죽어 있던 가나는 더욱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요코가 “나, 결혼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어. 일부러 시간 내서 와 주었는데 미안. 축의금은 나중에 돌려줄게.”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가나는 이번에야말로 너무 충격을 받아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요코가 결혼을 깨뜨려 버렸어. 결혼식 날 폭풍우가 쳤으니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그건 전부 내 탓이야.’

 

친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가나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맙고 소중했던 〈해야 떠라 레몬〉이 지금은 원망스러워 거들떠도 보기 싫었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오히려 더욱더 괴로울 뿐이었다.

 

결국 가나는 몇 주 뒤 요코를 만나러 갔다.

 

요코는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다. 웃는 얼굴로 자기를 맞아 주는 요코에게 가나는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미안하다니, 뭐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결혼식 말이야....... 그 폭풍우는...... 아마도 나 때문일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 알겠다! ‘폭풍우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구나?”

 

요코는 그런 말에 마음 쓰지 말라며 웃었다.

 

“정말로 가나 네가 그 폭풍우를 불러 줬다면 오히려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 남자랑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어?”

“뭐?”

 

 

가나는 뜻밖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나, 넌 그때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으니 모르겠지만...... 두 번째 천둥, 번개가 쳤을 때 그 사람이 내 손을 홱 뿌리치더니 자기 엄마 품으로 도망치더라니까. ‘엄마, 무서워잉.’ 이러면서 말이야.”

“에이, 설마.......”

“진짜야. 아이처럼 벌벌 떨면서 엉엉 울더라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당황스러워했다니까. 그 사람 엄마는 또 어떻고. ‘우리 애기, 괜찮아, 괜찮아. 엄마랑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라면서 야단스럽게 달래더라. 그러더니 진짜로 둘이서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비에 홀딱 젖은 신부는 내팽개치고 말이야!”

 

요코는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까 그 남자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 도저히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 ......게다가 이건 나중에 안 얘긴데...... 그 남자, 단순히 겁쟁이에 마마보이 정도가 아니었어. 돈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여기저기 빚도 많다더라. 나랑 결혼하려던 것도 내 재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게 진짜야?”

“그래, 진짜라니까. 완전히 당할 뻔했지 뭐야. 내 앞에서는 감쪽같이 연기를 한 거지. 우리 아버지는 폭풍우 덕에 파혼할 수 있었다고 오히려 기뻐하셔!”

 

밝은 얼굴로 말하는 요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문득 깨달았다.

 

〈해야 떠라 레몬〉의 효과는 ‘축하하고 싶은 날의 날씨를 맑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혼이라면 축하 따위 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만약 그런 남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요코는 틀림없이 불행해졌을 테니까. ‘축하하고 싶지 않은 날’이라서 〈해야 떠라 레몬〉이 맑은 날씨 대신 비를, 폭풍우를 부른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폭풍우가 휘몰아쳤나?”

 

‘다만 해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축하하고 싶은 날뿐. 전혀 축하하고 싶지 않을 때는 폭풍우를 부른다.’

 

병 바닥의 스티커, 뭉개져서 읽을 수 없었던 부분에 혹시 이런 내용이 쓰여 있던 건 아닐까? 그렇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비로소 머릿속이 맑아지며 가나는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요코가 슬퍼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다. 말도 안 되는 남자하고 결혼하지 않은 것도 기쁘다. 가나는 마치 위기일발의 순간에 공주님을 구출한 기분이었다.

 

문득 과자 가게의 주인 베니코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은혜로운 비’도 있다고 했다. 그래, 그 사람 말이 옳았다. 〈해야 떠라 레몬〉이 퍼부은 폭풍우는 좋은 일을 가져왔으니까.

 

“아, 개운해.”

 

가나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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